세계 원유 5분의 1 지나던 길목 흔들리자 송유관·철도·저장시설 확충
사우디 동서 송유관 풀가동…UAE는 푸자이라행 제2 송유관 추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걸프 산유국들이 송유관과 철도, 에너지 저장시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며 호르무즈 해협 우회망을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오랫동안 페르시아만 원유 수출의 핵심 길목이었다. 전쟁 전까지도 전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지났다. 그러나 이란전으로 이 길목이 실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자 걸프 국가들은 해상 운송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 수출 경로를 서둘러 확보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걸프 지역의 에너지 물류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원유뿐 아니라 연료·원자재 운송까지 해상 운송 일변도에서 벗어나 송유관, 트럭, 철도, 새 항만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WSJ은 미국과 이란이 해협 통항 재개에 합의해 해상 수출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수출 경로를 여러 갈래로 나누려는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비상 수출망의 필요성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UAE의 술탄 알자베르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은 최근 애틀랜틱카운슬 포럼에서 “세계 에너지의 너무 많은 부분이 여전히 너무 적은 길목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영 석유회사 아드녹 대표이기도 한 그는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느냐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출 경로와 접근성, 저장 능력, 비상 우회망의 문제”라고 말했다.
UAE도 호르무즈 해협 밖에 있는 전략 항구 푸자이라로 일부 원유 수출을 돌렸다. 아부다비는 지난 5월 같은 경로를 따라 두 번째 송유관 건설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 송유관이 2027년 가동되면 푸자이라를 통한 수출 능력은 두 배로 늘어난다.
UAE의 송유관 확장은 단순한 우회로 확보를 넘어 산유국 간 힘겨루기와도 맞물려 있다. UAE는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했는데, 이는 OPEC 생산 할당량에서 벗어나 원유 생산을 늘리려는 의도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호르무즈 우회망은 UAE가 사우디의 지역 석유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
물론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추는 일은 쉽지 않다. 내륙 송유관도 드론 공격에 취약하고, 액화천연가스(LNG)처럼 일부 핵심 에너지는 여전히 선박 운송에 의존해야 한다. 새 송유관 건설도 수년이 걸리는 대형 사업으로, 토지 사용권과 시설 보안, 자금 조달, 외교 합의가 모두 필요하다.
WSJ은 그럼에도 걸프 지역에서 장기 투자를 밀어붙이려는 분위기는 더 강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유럽외교협회 방문연구원 친치아 비앙코는 “사우디와 UAE가 처음 호르무즈 우회 송유관에 투자했을 때 사람들은 너무 비싸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며 “그러나 결국 그 투자는 매우 가치 있는 선택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두바이 소재 에너지 컨설팅업체 카마르에너지의 로빈 밀스 최고경영자는 우회망이 구축되면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로 삼는 효과도 줄어든다고 봤다. 그는 “우회로가 생기면 추가 봉쇄 위협의 힘이 약해진다”며 “이란이 해협을 닫아도 차단할 수 있는 수출 물량이 줄고,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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