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규 2집 '퓨어플로우 파트 원((PUREFLOW) pt.1)' 발매
"상처는 치열함의 증거"
"두려움의 허상 마주하며 한 걸음 나아가"
이들은 데뷔 이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이프푸), '더 그레이트 머메이드(The Great Mermaid)' 등을 통해 금기에 도전하며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직조해 왔다. 이번 신보의 주축이 된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 모티프는 그 서사의 필연적 확장이다. 흔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공상과학(SF) 장르의 시초가 19세기 여성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경이로운 상상력에서 탄생했다는 역사적 맥락은 르세라핌의 궤적과 정교하게 조응한다.
소설 속 "나는 두려움이 없다, 고로 강력하다(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라는 원문의 선언은 르세라핌의 시선을 거쳐 "우리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강하다"로 전복된다. 주류의 잣대를 깨뜨린 메리 셸리의 문학적 성취를 기형적이고도 아름다운 '크리처스(Creatures)'로 부활시킨 셈이다.
데뷔 당시 "세상은 나의 것"이라며 두려움 없이 돌진하던 소녀들은 4년의 궤적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을까.
최근 성동구에서 만난 르세라핌 허윤진, 사쿠라, 카즈하, 홍은채는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앞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때는 겁도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부딪히며 발생하는 파열음, 그리고 그것을 봉합하는 연대가 자리한다.
카즈하는 "데뷔 때에 비해서 지금이 좀 더 진짜 자매에 가까운 끈끈한 관계가 맺어져 있다"며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고백하고 서운함을 말하는 게 이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런 사람 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했기 때문에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것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시선의 문제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붐팔라(BOOMPALA)'는 그 시선의 이동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이다. 특히 이 곡은 '반야심경'이 설파하는 공(空)과 무(無)의 개념을 팝(Pop)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두려움의 실체를 정교하게 해부한다. 두려움은 외부에 실재하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내면의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뼈아프고도 다행스러운 깨달음이다.
이 무거운 철학적 통찰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경쾌한 라틴 하우스(Latin House) 장르와 '마카레나' 샘플링을 만나 유쾌한 제의(祭儀)가 된다.
허윤진은 "'붐팔라(BOOMPALA)'라고 말하는 그 구간 자체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듯한 표현을 의도했다"며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이나 스트레스를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순화시키는 노래"라고 정의했다. 무거움을 가장 가벼운 방식으로 털어내는 것, 이것이 지금 르세라핌이 도달한 해탈의 방식이다.
타인의 상처와 세계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뻗으려는 윤리적 태도는 앨범 전반을 관통한다. 르세라핌은 자신의 흉터를 숨기지 않는다. 상처를 말하는 것은 때로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자괴감이 다른 사람의 자괴감을 만나 서로를 알아볼 때, 그것은 더 이상 자괴감이 아니라 단단한 연대가 된다.
완벽하게 세공된 매끈한 가짜보다, 기워지고 흉터가 남아있더라도 요동치며 생동하는 진짜가 더 아름답다. 르세라핌 출발의 모티브가 된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르세라핌과 소속사 쏘스뮤직 고유의 아름다운 재해석이다. 4년의 시간 동안 자신들의 상처를 기꺼이 영롱한 진주로 빚어낸 르세라핌은 정규 2집 '퓨어플로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선언했다. 르세라핌 2.0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대신 반야심경을 통해 깨달은, 그렇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유를 선택한 다섯 멤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약칭인 반야심경은 공(空)사상이 요체다. 허상뿐인 두려움을 걷어낸 이들의 세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거센 흐름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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