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끊긴 이란, 일자리도 끊겼다…100만명 실직에 식료품값 폭등

기사등록 2026/05/21 17:05:34 최종수정 2026/05/21 17:08:56

WSJ "이란 인터넷 연결률 수주째 1~2% 수준"

기업 거래 끊기고 온라인 일자리 타격…1000만개 일자리 영향권

[테헤란(이란)=AP/뉴시스]이란 테헤란의 테헤란대학교 정문에서 여성들이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인플레이션 급등 등 이란 경제의 어려움이 전쟁을 견뎌내고 미국의 요구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2026.05.13.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이란이 인터넷 차단을 이어가면서 전쟁과 경제난에 짓눌린 민생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거래처와 끊겼고, 온라인 생계에 의존하던 노동자들은 일감을 잃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약 3개월 동안 강도 높은 인터넷 차단이 이어지면서 기업 활동과 시민들의 일상이 동시에 마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지털 감시단체 넷블록스는 이번 차단을 “현대 인터넷 연결 역사에서 추적한 것 가운데 범위와 기간 모두 가장 심각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란의 강력한 인터넷 제한은 지난해 12월 전국적 반정부 시위 이후 본격화됐다. 경제난에서 촉발된 시위가 확산하자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에 나섰고, 외부 세계로 정보가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 접속도 차단했다.

넷블록스에 따르면 이란의 인터넷 연결률은 시위 전만 해도 전체 용량의 90~100% 수준이었지만, 최근 몇 주 동안은 1~2% 안팎에 머물렀다. 지난 1월8일 시작된 제한은 같은 달 23일 일부 완화됐으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2월28일 다시 강화됐다.

인터넷 차단은 이미 전쟁으로 흔들린 이란 경제에 추가 충격을 주고 있다. 이란에서는 1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고, 식료품 가격은 급등했으며, 통화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이란 항구를 봉쇄하면서 테헤란은 주변국과 연결된 철도·도로망 등 우회 경로에 의존해 교역을 이어가고 있다.

[테헤란=AP/뉴시스] 지난 19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준군사 자원민병대 바시즈 소속 여성 대원(왼쪽)이 여성들에게 AK-47 계열 돌격소총 다루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2026.05.21.
독일 필립스마르부르크대의 중동 경제 전문가 모하마드 레자 파르자네간은 이란에서 약 1000만개의 일자리가 디지털 경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접속 제한은 생산성을 해치고 기업 신뢰를 약화시키며, 안정적인 접속을 확보할 수 있는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키운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일상도 무너지고 있다. 이란인들은 가족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거나, 병원 진료 뒤 의료기록을 확인하거나,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고 WSJ에 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 이란의 보복 공격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상당수 시민들은 정부 입장에 치우치지 않은 뉴스를 접하기 어려웠다.

이란의 인터넷은 차단 전에도 강한 검열을 받아 왔다. 다만 인터넷은 이미 이란의 일상 경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소상공인들은 텔레그램, 인스타그램, 왓츠앱으로 고객과 연락하고 상품을 홍보했으며, 프리랜서와 프로그래머들은 국내외 고객을 상대로 원격 근무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란 정부는 특정 플랫폼을 일시적으로 막는 수준을 넘어 인터넷 연결 자체를 강하게 제한하고 있다. 테헤란의 한 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인터넷 제한 이후 회사들이 축소되거나 문을 닫으면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와 AI 역량을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들도 사실상 멈췄다고 그는 전했다.

[바르셀로나(스페인)=뉴시스]스페이스X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에 마련한 스타링크 전시 부스. (사진=심지혜 기자)
전쟁 전 두바이를 통해 들어오던 하드디스크와 컴퓨터 부품 등 기술 장비 수입도 차질을 빚고 있다. 물류가 끊기면서 관련 장비 가격은 급등했다.

우회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올해 초 이란 정권의 시위 진압 이후 수천대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기를 이란에 몰래 들여보냈다. 수만명의 이란인이 이를 이용해 가족과 연락하거나 정부 검열을 피해 정보를 외부에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 스타링크 단말기를 보유하는 것은 불법이며, 적발될 경우 수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이란 정부는 일부 이용자에게 제한을 완화해주는 ‘인터넷 프로’라는 등급제 서비스도 도입했다. 신청자는 더 넓은 인터넷 접속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방대한 개인정보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른바 ‘화이트 SIM 카드’를 통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돈을 내고 신원을 등록할 수 있는 일부 이용자와 기업에 더 넓은 접속권을 주는 방식이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인권단체 미안그룹의 아미르 라시디 디지털권리·보안 담당자는 “이란은 디지털 권위주의의 새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며 “인터넷 접근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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