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회장, 19일 오전 "머리 숙여 사죄" 사과문 발표
코로나19 시기 '멸공' 논란 키운 정 회장…책임론 부상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신세계그룹이 또 한번 이념 논란에 휩싸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지만, 이념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정용진 회장은 19일 오전 자신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던 어제, 신세계그룹의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가 있어서도 안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했다"며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어 "이번 사안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오신 모든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SKC컴퍼니)는 전날 버디위크 이벤트의 일환으로 탱크텀블러 시리즈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이벤트를 '탱크데이'로 명명하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탱크데이' 마케팅은 곧바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역사적 비극을 마케팅에 부적절하게 이용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탱크데이'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계엄군의 탱크를, '책상에 탁!' 표현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은폐성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스타벅스는 행사를 중단한 뒤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논란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마저도 소용 없었다.
광주전남추모연대는 "천박한 역사인식"이라고 규탄했고,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스타벅스는 5·18 영령과 광주 시민을 조롱한 부도덕한 마케팅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했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채널에 "역사적인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광주 희생자들과 광주 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5.18 탱크데이' 이벤트라니"라며 "그날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이 대체 몇이고 그로 인한 정의와 역사의 훼손이 얼마나 엄혹한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요"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며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례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당일 손정현 대표를 즉시 해임하며 수습에 나섰다.
신세계그룹 측은 "정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에서 발생한 논란에 대해 책임자 및 관계자에게 중징계를 내릴 것을 직접 지시했다"며 "이번 사고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일에 일어난 것에 대해 격노하고, 그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현재 스타벅스코리아에서는 손 대표를 비롯해 기획담당 상무가 경질된 상태다.
이날 오전에는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주재로 스타벅스코리아에서 리더십회의를 진행하며, 이번 사태의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에 대한 조사를 비롯해 향후 재발 방지책 등에 대해 논의한다.
다만 현재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역시 현재 경영실장이 부재한 상태로, 조직 개편을 진행 중인 만큼 밀도 있는 회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달 임영록 경영전략실장 겸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의 겸직을 해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신세계그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결과를 대중에 공개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어떤 해명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엄격한 역사의식과 윤리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저를 포함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신세계그룹의 이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 회장은 2021년 자신의 사회관계망(SNS)에 빨간색 지갑을 든 사진을 올리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해시태그를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논란이 중국과 베트남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듬해인 2022년엔 잇달아 '멸공(공산주의를 멸함)' 단어를 사용해 논란을 불러왔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이 정 회장의 '멸공' 행보에 가세하면서 확산됐다.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자 정 회장은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며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이라고 사과하며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 회장은 '멸균', '박멸', '#ㅁㅕㄹ', '멸' 등 멸공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여러차례 게시했고, 급기야 자신의 인스타그램 소개글에 우회적으로 '멸공'을 표시해 논란을 키웠다. 정 회장은 소개글을 뒤집어보면 '멸공'이 나타나게 했다.
특히 2024년 3월 회장 승진 후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삭제해 가는 시점에 '멸공'을 거꾸로 적은 소개글은 그대로 두며 오너리스크를 자초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이날 오전 김수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대외협력본부장이 광주 5·18기념문화센터를 찾아 오월 단체 관계자들과 면담을 추진했으나, 5월단체가 이를 거부하며 만남이 무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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