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믹스, 유행 대신 고유함의 '미학적 투쟁'…'헤비 세레나데'가 짊어진 사랑의 질량

기사등록 2026/05/17 10:04:36

미니 5집 '헤비 세레나데' 리뷰

[서울=뉴시스] 엔믹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5.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트렌드라는 이름의 얕은 류(流)를 부유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고유한 심해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K-팝의 거대한 산업 논리 속에서 취향을 발명해 내는 일은 종종 무모한 도전으로 치부되지만, 기어코 도달한 자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미학적 훈장이 된다.

대세 걸그룹 '엔믹스(NMIXX)'가 발매한 미니 5집 '헤비 세레나데(Heavy Serenade)'는 장르의 융합을 넘어 감정과 철학을 믹스(MIXX)해 낸, JYP엔터테인먼트와 여섯 소녀가 써 내려간 치열한 인정투쟁의 승전보다.

엔믹스의 디스코그래피는 단선적인 유행의 나열이 아닌, 서사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문학적 구조를 띤다. 지난해 미니 4집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Fe3O4: FORWARD)'가 촘촘하고 유기적인 서사로 벽을 부수고 나아가는 모험가의 뼈대를 세웠다면, 같은 해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정규 1집 '블루 밸런타인(Blue Valentine)'은 믹스팝의 다채로운 변주를 통해 대중성이라는 바다를 너그럽게 품어낸 다양성의 총체였다.
[서울=뉴시스] 엔믹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5.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무(無)의 공간, 믹스토피아에서 이들은 미니 5집 '헤비 세레나데'를 통해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주제인 사랑을 꺼내 든다. 전작들이 외부의 장벽을 부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물리적 대항해시대였다면, 신보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해 타인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우주로의 탐험이다. 실험성과 도전 정신은 이제 뾰족한 가시가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드는 묵직한 중력(Heavy)으로 치환됐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존의 내 세계가 무너지는 뼈아픈 경험을 동반한다. 온전하고 단단했던 자아를 기꺼이 깨뜨려 유리 파편 같은 그 조각들로 상대를 위한 부케(Bouquet)를 엮어내는 일. 타이틀곡 '헤비 세레나데'의 노랫말 '날 깨뜨려서 만들래 / 단 하나뿐인 부케(bouquet) / 글래시 세레나데(Glassy serenade) / 서툴러도 뭐 어때?'는 사랑이 지닌 이 아름답고도 파괴적인 헌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서울=뉴시스] 엔믹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5.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랑의 부피는 가벼운 솜사탕 같을지 몰라도, 그 밀도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Z세대의 시인이라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서정적인 언어는 엔믹스의 폭발적인 보컬과 만나, 찰나의 설렘을 넘어 확신에 찬 관계의 질량을 오롯이 증명해 낸다.

더불어 수록곡들에서 두드러지는 멤버들의 창작 참여는 이 서사의 진정성을 담보한다. '라우드(LOUD)'를 단독 작사한 릴리와 '디프런트 걸(Different Girl)'에 참여한 배이는, 타인이라는 다르고 낯선 우주('Different Girl')가 내 삶에 충돌하듯 들어왔을 때 이를 숨기지 않고 소리 내어 긍정('LOUD')하는 주체적인 화자의 태도를 문학적으로 그려냈다.
[서울=뉴시스] 엔믹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5.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리더 해원은 과거 한 다큐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 자체가 저희 음악의 정체성인 것 같아요." 이 단단한 통찰은 엔믹스가 K-팝 신에서 점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위치를 대변한다. 초기 믹스팝(MIXX POP)은 대중에게 미묘한 회색지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JYP의 뚝심 있는 기획력과, 육각형 그룹이라 불리는 엔믹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및 라이브 역량은 이 난해함을 결국 압도적인 사운드스케이프로 설득해 냈다. '헤비 세레나데'에 담긴 트랜스, 애시드, 드럼앤베이스의 정교한 충돌은 이제 낯섦이 아니라 이들만이 주조할 수 있는 황홀경이다.

쉬운 길, 즉 이미 성공 공식이 입증된 유행을 모방하는 대신 가장 험난한 고유성의 길을 개척한 이들의 선택은 옳았다. 트렌드는 소비되지만, 취향과 철학은 수집되고 영원히 남는다. '에프이쓰리오포'로 증명한 패기, '블루 밸런타인'으로 입증한 대중성, 그리고 '헤비 세레나데'로 도달한 미학적 깊이까지. 엔믹스의 실험은 지금, 가장 완벽한 궤도에 올랐다. 진정한 믹스토피아는 그들이 서 있는 바로 그 무대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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