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AI가 더 이상 미국 경제의 단순한 순풍이 아니라 성장률, 주식시장, 기업이익, 무역수지, 고용 심리까지 흔드는 거대한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WSJ은 AI 붐이 미국 경제의 실제 흐름을 가릴 정도로 커졌다고 봤다. 관세와 이란 전쟁 같은 대형 변수마저 AI 투자 열풍에 묻히면서, 지금 미국 경제가 얼마나 건강한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AI 투자 규모는 이미 국방비와 비교될 정도로 커졌다. 모건스탠리는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이 올해 8000억 달러를 넘고, 내년에는 1조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이퍼스케일러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을 뜻한다.
내년 AI 관련 자본지출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미국의 예상 국방비 지출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WSJ는 전했다.
겉으로 보이는 성장률도 AI가 떠받치고 있다. 미국의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연율 2%로 비교적 양호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AI 경제와 비AI 경제가 뚜렷하게 갈렸다. 개인소비는 1.6% 증가에 그쳤고, 주택 투자와 사무실·공장 같은 건물 투자, 트럭·항공기 등 운송장비 투자는 줄었다. 반면 기술 장비 투자는 43%, 소프트웨어 투자는 23%, 데이터센터 건설 투자는 22% 급증했다.
WSJ은 자체 추산을 통해 AI 관련 경제는 31% 성장한 반면, AI를 제외한 경제는 0.1% 성장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가 전체적으로는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AI를 빼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는 의미다.
AI 붐은 무역수지도 흔들고 있다. 미국의 1분기 수입이 크게 늘며 무역적자가 확대된 것도 AI 장비 수요와 무관하지 않다. 대만의 무역흑자는 GDP의 24%라는 이례적 수준에 이르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이 포함된 한국 코스피지수도 올해 78% 올랐다고 WSJ은 전했다.
증시도 AI 착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올랐지만, S&P500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시가총액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 빅테크가 다시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개 종목을 같은 비중으로 놓고 보면 지수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기업이익도 빅테크 쏠림이 뚜렷하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기업의 1분기 이익은 2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매그니피센트7의 이익 증가율은 61%인 반면, 나머지 493개 기업은 16%에 그친다. 이마저도 마이크론 같은 반도체 기업 실적이 포함돼 부풀려진 수치라고 WSJ은 짚었다.
문제는 AI 붐의 과실이 노동자보다 자본에 더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분기 노동 보상은 연율 3.1% 증가했지만, 물가를 반영하면 0.5% 감소했다. 전체 기업 부문 산출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은 54.1%로 떨어져 1947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AI는 고용 심리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기업과 과학자들이 AI가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업무를 계속 강조하는 가운데, 코인베이스와 스냅 같은 기업들은 AI 효율성을 해고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하고 있다. 갤럽 조사에서는 AI를 도입한 기업 직원의 23%가 5년 안에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WSJ은 이런 불안이 임금 상승을 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자가 AI에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고 느끼면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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