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산마르코에 뜬 이우환…伊 개념미술 거장 보에티와 나란히 전시

기사등록 2026/05/08 06:29:37 최종수정 2026/05/08 06:33:22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

SMAC Venice에서 11월 22일까지 개최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Lee Ufan’은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펼쳐진다.

 일본 모노하(Mono-ha)의 사상적 기둥이자 한국 단색화의 핵심 작가인 이우환의 70여 년 작업세계를 압축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한복판. 관광객과 셀카봉, 비둘기 떼와 수상버스의 소음 사이를 지나 산마르코 아트센터(SMAC Venice)에 들어서면 갑자기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2층의 8개 공간에 선보인 이번 전시는 회화와 설치,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신작을 통해 이우환이 평생 탐구해온 ‘관계(Relatum)’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펼쳐낸다. 흰 캔버스 위 몇 개의 붓질, 모래 위 수천 개의 철막대, 서로 키스하듯 놓인 돌 두 개가 공간 전체의 공기를 바꾼다.

전시는 SMAC Venice의 8개 전시실 전체를 사용해 초기 ‘From Point’, ‘From Line’ 연작부터 대표 설치 ‘Relatum’ 시리즈, 최근 회화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작업 세계를 조망한다. 단순한 회고전이라기보다, '관계'라는 이우환의 사유를 공간으로 번역한 하나의 거대한 환경에 가깝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작품은  ‘Relatum (formerly Iron Field)’(1969/2026).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설치 작업도 눈길을 끈다. ‘Relatum (formerly Iron Field)’(1969/2026)다. 모래 위에 수천 개의 철막대가 수직으로 꽂혀 거대한 금속의 들판을 만든 설치다. 멀리서 보면 갈대숲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금속의 차가운 긴장이 피부에 닿는다.

이우환은 1960년대 후반부터 회화와 병행해 조각 작업을 전개하며 자신을 '창조자'보다 “매개자(mediator)”로 규정해왔다. 자연과 인공 재료의 만남을 통해 존재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Relatum’이라는 단어 역시 중요하다. 이우환은 1972년 이후 자신의 조각 작업에 모두 ‘Relatum’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사물과 요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철학적 용어다. 작품은 완결된 조형물이 아니라 관계가 발생하는 장(field)으로 진동한다.

특히 이번 베니스 버전은 2019년 미국 디아 비컨(Dia Beacon) 전시 이후 처음 다시 구성된 설치다. 베니스의 건축 구조에 맞춰 새롭게 재배치되며 공간 전체와 긴밀하게 호흡한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우환의 회화 역시 공간과 함께 작동한다. 긴 회랑형 구조를 따라 이어지는 흰 캔버스 위 검은 붓질은 단순한 점과 선이 아니다. 반복과 멈춤, 생성과 소멸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흔적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붓 끝의 떨림이 남아 있고, 멀리서 보면 그것은 하나의 침묵처럼 떠오른다.

최근작에서는 변화도 감지된다. 검은 점과 선 중심의 화면에서 벗어나 붉은 기운이 스며드는 색의 농담이 등장한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번져드는 붉은 색면은 마치 빛이 피어나는 순간 같다. 형태를 설명하기보다 존재의 온도를 남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제시카 모건은 외신 인터뷰에서 “이우환 작업 전체의 궤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며 “그는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설명했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로 이번 전시는 조형보다 ‘사이(interval)’를 보여준다. 이우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채움보다 비움이고, 형상보다 거리다. 돌과 철판, 벽과 캔버스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이 작품의 본체가 된다.

베니스라는 도시와도 묘하게 맞물린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베니스는 늘 존재와 부재 사이를 흔들리는 공간이다. 이우환의 작업 역시 충돌보다 공존, 소유보다 관계를 향한다. 그래서 화려한 비엔날레 현장 속에서도 그의 전시는 가장 조용한 장소가 된다.

이우환은 돌을 조각하지 않는다. 대신 돌이 “돌로 존재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배치를 통해 새로운 감각의 관계망을 생성한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이우환이 왜 여전히 세계 미술계에서 동시대적인 작가인지를 보여준다. 이미지 과잉 시대에 그는 가장 적은 것으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든다. 수많은 작품이 관객을 향해 소리치는 비엔날레 현장에서, 그의 작업은 오히려 침묵으로 말을 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SMAC Venice가 이우환 개인전과 함께 이탈리아 개념미술의 거장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전시를 나란히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두 전시는 같은 공간 안에서 병치되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두 작가가 공유하는 사유의 결을 드러낸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열린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이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심장부 SMAC Venice에서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보에티는 지도, 언어, 질서와 우연의 구조를 탐구했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핵심 작가다. 반면 이우환은 점과 선, 돌과 철판 같은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존재와 관계를 사유해왔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만드는 행위’보다 세계와의 관계 맺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맞닿는다.

실제로 전시장 입구에는 보에티와 이우환의 전시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다. 베니스 한복판에서 동서양 현대미술의 두 축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베니스의 물빛과 침묵 사이에서 펼쳐진 이우환의 ‘관계의 철학’은 오는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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