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렉트로 팝 전설, 7년 만의 내한공연 현장 리뷰
독일의 일렉트로 팝 전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지난 4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7년 만에 한국 관객과 마주했다.
여전히 팀을 이끄는 랄프 휘터(80)를 중심으로 1970년 결성된 이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현대 음악의 지형도를 그려온 설계자들이다.
이날 1600석을 가득 메운 풍경은 자못 생경하면서도 경이로웠다. 예매처 놀 티켓 집계 결과 20대(39.2%)와 30대(38.7%)가 관객의 주축을 이뤘다. 과거의 유산이 '추억'이라는 이름의 박제가 되기를 거부하고, 동시대의 가장 '힙한 언어'로 번역돼 젊은 세대의 감각을 자극한 것이다. 이는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의 옷을 입어도 그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영원한 현재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청각의 시각화, 시각의 청각화…'종합예술'의 정수
공연은 '넘버스(Numbers)'와 '컴퓨터 월드(Computer World)'로 포문을 열었다. 무대 위 네 명의 멤버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부품처럼 일사분란하게 서서 소리를 공간화했다. 크라프트베르크가 추구해온 '기계 인간(Man-Machine)' 콘셉트는 단순한 연출을 넘어, 기술과 인간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긴장감을 드러낸다.
백미는 '스페이스랩(Spacelab)'이었다. 한반도의 위성 지도가 화면에 나타나고, 서울 전경을 지나 우주선이 공연장인 명화라이브홀에 당도하는 순간, 관객들은 청각이 시각으로 치환되는 공감각적 쾌감을 경험했다. 몬드리안의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 '더 맨-머신(The Man-Machine)'의 기하학적 영상과 음악의 유기적 결합은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이라는 찬사가 결코 수사적 과장이 아님을 보여줬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부재의 현존… 애도의 주파수
이날 공연에서 가장 깊은 정서적 파동을 일으킨 지점은 고(故) 류이치 사카모토를 향한 추모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멜로디가 전자음의 결을 타고 흘러나올 때, 공연장은 일순간 거대한 애도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별도의 영상 없이 오직 소리에만 집중하게 한 연출은 역설적으로 그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일상의 리듬을 채집하다… 자전거와 기차의 비트
후반부로 치닫으며 공연은 속도감의 질감을 탐구했다.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인간의 숨가쁜 호흡이 막대그래프 형태의 비트로 구현됐다. 물리적 운동 에너지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성취였다.
'트랜스-유럽 익스프레스(Trans-Europe Express)'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차가 궤도를 지나는 규칙적인 소음, 즉 일상의 소음을 미니멀한 전자음으로 끌어올려 음악적 서사를 구축했다. 이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 속에 얼마나 정교한 리듬이 숨어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과정이었다.
◆발전소는 멈추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송전
독일어로 '발전소'를 뜻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낡지 않는다. 아니, 낡을 수 없다. 그들이 다루는 대상이 미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026년 서울의 밤, 이들이 송전한 전자파는 관객들의 심장에 닿아 새로운 비트로 변환됐다.
정교하게 설계된 사운드와 영상의 정련도는 어떤 화려한 군무보다 강렬한 쾌감을 선사했다. 7년 만의 재회는 크라프트베르크라는 이름의 고전이 어떻게 시대를 관통하며 젊은 세대의 힙한 감각과 조응하는지를 보여준, 한 편의 완벽한 3D 서사시였다. 기술은 차가울지언정, 그 기술로 빚어낸 예술은 여전히 뜨거웠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