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멈추게 하는 노래"…자살 유족의 '생명 버스킹' [함께家]

기사등록 2026/05/04 09:00:00

[공동 기획-연결이 생명이다⑫]

자살 유족 배진희 씨 '생명문화 캠페인' 버스킹

"노래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과 다리 역할"

"상실의 노래를 지나 이제 소망을 노래하고파"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
[서울=뉴시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생명문화 캠페인' 버스킹 중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배진희 씨 2026.04.30. suejeeq@newsis.com

"잘 태어났습니다! 잘 태어난 김에 잘 살아봅시다!"

지난달 29일 해 질 무렵,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  퇴근길 인파 사이로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가 울려 퍼지자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이날 무대에 선 이는 자살 유족이자 싱어송라이터 배진희씨다. 그의 14번째 버스킹은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가 주관한 '마음이음 예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렸다.

배 씨는 공연에 앞서 "이번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결국 저는 말이 아니라 노래로 여러분을 만나러왔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생명문화 캠페인' 버스킹 중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배진희 씨 2026.04.30. suejeeq@newsis.com

그의 노래는 개인의 상실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고, 이후 동생과 아버지를 자살로 떠나보냈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아픔을 노래로 건네고 싶었다"며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놓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그는 '산책', '엄마 난', '너의 시간을 이어갈게', '끝나지 않은 편지' 등 자작곡과 대중가요를 함께 불렀다. 첫 곡 '산책'에서는 관객에게 후렴구를 따라 불러달라 청했고, 머뭇거리던 목소리들이 어느새 하나로 모였다.

'엄마 난'에서는 어린 시절 떠난 어머니를 향한 애도를 꺼냈고, '너의 시간을 이어갈게'와 '끝나지 않은 편지'에서는 남겨진 이들의 시간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배 씨는 "상실을 노래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소망을 노래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생명문화 캠페인' 버스킹 중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배진희 씨 2026.04.30. suejeeq@newsis.com

공연은 듣는 이들이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기억을 깨웠다. 한 70대 남성은 공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오래 전 아들을 잃은 자살 유족이라는 그는 "이런 활동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아이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는 상담전화 109가 적힌 안내문과 홍보물도 함께 배포됐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이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 손에 쥐어졌다.

마지막 곡은 'Happy Birthday to You'였다. 배 씨는 "한동안 생일을 축하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기쁘게 받으려 한다"며 "여러분도 그렇게 축하받아달라"고 말했다.

그에게 버스킹은 공연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이다. 그는 "노래는 자살 충동을 멈추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한 수단이었다"며 "벼랑 끝에 선 내가 다른 벼랑 끝의 사람을 바라보게 해주는 다리"라고 했다.

이어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죽음을 멈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2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생명문화 캠페인' 버스킹 중 배포되는 홍보물 2026.04.30. suejeeq@newsis.com

◆ '함께家' 프로젝트는
뉴시스는 자살·고립·저출산 문제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로 바라보는 생명존중 공익 캠페인 '함께家'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절 속에 놓인 이들에게 공동체가 함께 가자는 뜻을 담아, 예방과 돌봄의 안전망을 넓히고자 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