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외무장관도 밀렸다…이란, 진짜 권력은 혁명수비대

기사등록 2026/04/24 09:10:00 최종수정 2026/04/24 09:33:09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 부상·은신 속 전쟁·협상 결정권은 군부 장성 집단으로

[서울=뉴시스] 이란 정규군과 이란혁명수비대(IRGC) 합동 지휘부 '하탐 알안비야' 대변인인 에브라힘 졸파가리. (사진 =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 갈무리)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이란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공식적으로는 아버지의 자리를 이었지만, 실제 전쟁과 협상을 좌우하는 실권은 혁명수비대(IRGC) 장성 집단이 쥐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상과 은신으로 공개 활동이 막힌 모즈타바는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라기보다 군부 집단지도체제의 상징적 수장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고위 관리와 전직 관리, 혁명수비대 관계자, 체제 내부를 잘 아는 성직자, 모즈타바를 잘 아는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알리 하메네이 시절의 1인 절대권력 구조가 무너지고 강경 군부 중심의 집단 의사결정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알리 하메네이 시절 전쟁과 평화, 미국과의 협상은 모두 최고지도자의 최종 판단 아래 움직였지만, 후계자인 모즈타바는 아직 그런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은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격으로 그의 아버지와 아내, 아들이 숨졌고, 본인도 다리와 손, 얼굴에 중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공개 연설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영상이나 음성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으며, 지시는 손글씨 편지와 전달책을 거쳐 오가는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러한 권력 공백을 메운 것은 혁명수비대다. 이란의 한 정치인은 NYT에 모즈타바가 나라를 “이사회 의장처럼” 운영하고 있으며, 실제 결정은 “이사회 구성원”, 즉 장성들이 함께 내린다고 말했다.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도 모즈타바가 아직 전면 통제권을 쥔 상태는 아니며, 현재는 이미 정리된 결정을 전달받는 위치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역시 모즈타바가 이름뿐인 지도자일 뿐, 아버지와 같은 의미의 최고지도자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NYT는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스라엘 및 걸프 국가들을 겨냥한 공격 전략, 미국과의 임시 휴전, 물밑 외교와 직접 협상까지 주도했다고 전했다. 협상 전면에는 외무장관 아바스 아락치 대신 혁명수비대 출신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섰고, 미국과의 협상 대표단에도 처음으로 혁명수비대 장성들이 직접 포함됐다고 한다. 반면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과 내각은 식량·연료 공급 같은 내치에 집중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아락치는 협상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게 NYT 설명이다.

[테헤란=AP/뉴시스] 1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난 3월 말 사망한 알리레자 탕시리 이란 혁명수비대(IRGC) 해군 사령관과 다른 희생자들의 장례 행렬에 조문객들이 모여 있다. 2026.04.02.
특히 최근 미국과의 2차 협상이 무산된 과정은 이란 권력 내부에서 누가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NYT에 따르면 이란 협상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할 준비를 하던 중 장성들이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상 봉쇄를 유지한 채 사실상 전면 항복을 압박하고, 미군이 이란 선박 2척을 나포하자 혁명수비대 수뇌부는 이를 휴전 위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아락치 외무장관은 전쟁 피해가 정부 추산 3000억 달러에 이르며 재건을 위해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군부 쪽 판단이 관철됐다고 NYT는 전했다.

모즈타바가 군부에 기대는 배경에는 개인적 인연도 깔려 있다. 그는 10대 때 이란·이라크 전쟁에 자원입대해 혁명수비대 하비브 대대에서 복무했고, 이 시절 맺은 인맥이 이후 군·정보기관 핵심부로 성장했다. 또 아버지의 거처에서 군사·정보 업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으며 혁명수비대 및 정보 수뇌부와의 결속을 더 굳혔다. 갈리바프 국회의장과 호세인 타예브 전 혁명수비대 정보수장, 모흐센 레자이 전 사령관 등은 그의 오랜 측근으로 꼽힌다.

다만 이란 내부에 군부 목소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외무장관도 국가안보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초강경파는 오히려 미국에 어떤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NYT는 현재의 권력 구조하에서는 장성들의 판단이 우세하며, 모즈타바도 좀처럼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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