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주지사 3선…이민자 가정 출신
AP에 따르면 조쉬 그린 현 하와이 주지사는 20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아리요시 전 주지사가 전날 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린 주지사는 성명에서 "아리요시 주지사는 겸손과 규율, 그리고 공공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와이에 평생을 바쳤다"며 "중요한 시기에 조용한 강인함과 청렴함으로 주를 이끈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아리요시는 1973년부터 1986년까지 3선 주지사를 지내며 하와이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73년 10월 존 번스 주지사의 병환으로 권한대행을 맡으며 처음 권력을 잡았고, 1974년 선거에서 압승한 뒤 1978년과 1982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정치 경력은 하와이에서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집권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민주당은 1954년 공화당으로부터 주의회 통제권을 탈환했고, 같은 해 아리요시는 준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준주 상원의원과 주 상원의원을 거쳐 1960년대 후반 부지사에 올랐다.
1926년 호놀룰루에서 일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후쿠오카 출신 스모 선수에서 하역 노동자와 세탁소 운영자로 생계를 꾸렸고, 어머니는 구마모토 출신이었다.
아리요시는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발음 장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 육군 정보국에서 통역병으로 복무했다.
전쟁 후 하와이 대학교와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고, 미시간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와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그는 정치 입문 배경에 대해 "소수자들이 직면한 장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는 백인이 독점하던 주지사 자리에 오르며 미국 정치사에서 상징적인 최초 기록을 세웠다.
재임 기간 동안 하와이는 관광 산업이 급성장하고 인구가 급증하는 변화를 겪었다. 아리요시는 이러한 성장 속도가 기반 시설과 환경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균형 발전을 강조했다.
1975년에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 공식 만찬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부인 진 아리요시와 함께 춤을 추며 "칼리히 출신의 아이가 백악관에서 춤추고 있다"는 대화를 나눈 일화는 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리요시의 후임 정치 세대에도 영향은 이어졌다. 그의 지지를 받았던 존 와이헤에는 1986년 하와이 원주민 혈통 최초의 주지사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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