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아이들은 '살아야' 조언보다 '고통' 공감을 원해요"[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⑤]

기사등록 2026/05/05 07:00:00

훈계 대신 공감… "부모도 함께 상담받아야"

사이버 고립 대신 체온…공동체 문화 절실

PPT 교육 한계… 위클래스 낙인부터 지워야

[서울=뉴시스]사단법인 자살예방전국학교연합회 주최로 열린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서로 발 마사지를 해주며 교감하고 있다. (사진=사단법인 자살예방전국학교연합회) 2026.04.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이다솜 기자 = <1부:자살에 노출된 초중고생>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생명이 소중하다는 PPT 교육은 아무런 울림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살아야 한다'는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봐 주는 관심입니다. 결국 해답은 단순합니다. 첫 번째도 관심, 두 번째도 관심입니다."

대한민국은 5년째 청소년 자살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하루 평균 0.7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 속에서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5일 뉴시스는 고진선 우리동네마음건강연구소 소장과 전태근 사단법인 자살예방전국학교연합회 이사장으로부터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들었다.

◆경제적 풍요 속 '정서적 빈곤'… 조언보다 공감

전문가들은 자살 위기에서 가장 먼저 작동해야 할 공간으로 '가정'을 꼽았다. 위기 신호를 처음 마주하는 곳이자, 마지막까지 아이를 붙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진선 소장은 특히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나타나는 '정서적 빈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고 소장은 "만나본 아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부모와 정서적 교감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며 "권위주의적인 가정일수록 부모는 지시만 반복하고, 아이는 마음 둘 곳을 잃어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마저 단절해버린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언보다 공감이라는 의미다. 아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유를 캐묻는 것도, 훈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전태근 이사장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느냐'며 아이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 '집안 망신시킨다'는 식의 다그침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만 상담 센터에 보내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며 "부모가 함께 상담에 참여해 대화 방식을 '지시'에서 '교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사단법인 굿위드어스 산하 우리동네마음건강연구소에서 운영 중인 모바일 무료 상담 서비스 '히어포유' 상담 모습. (사진=우리동네마음건강연구소 제공) 2026,04.27. photo@newsis.com

◆"의대 아니면 실패자?…다양한 꿈의 지도 필요"

엔지니어나 기술직, 예술 등 다양한 진로를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부 안 하면 끝"이라는 말 대신,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전 이사장은 "서울대나 의대가 아니면 실패한 인생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아이들의 삶의 의미를 무너뜨린다"며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때 삶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단절된 관계 역시 중요한 문제로 꼽혔다. 전 이사장은 "사이버 공간에서 상대를 죽이는 게임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오히려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며 "친구를 경쟁자가 아닌 온기를 가진 '동료'로 인식하게 만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현장에 '스킨십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다. 친구끼리 발 마사지를 해주거나 손을 맞잡는 활동 등을 통해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하자는 취지다.

전 이사장은 "직접 온기를 느끼면 '내가 아픈 만큼 상대도 아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다"며 "그 경험은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이 되며 곧 생명 존중의 씨앗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입식 강의보다는 뮤지컬이나 영화 등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예술 프로그램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주입식 강의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생명의 가치를 체득하게 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 이수용 PPT'는 안돼… '위클래스' 낙인부터 지워야"

정책적으로는 현재의 '구멍 뚫린' 예방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2024년부터 자살 예방 교육이 전 국민 대상 법적 의무 교육으로 지정됐으나, 교육 현장은 여전히 '형식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 이사장은 "지금의 자살 예방 교육은 강사가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PPT 화면을 띄워놓고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준"이라며 "학생들에게 아무런 감동이나 변화를 주지 못하는, 단순히 '교육을 이수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행정 절차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학교 내 상담 공간인 위(Wee)클래스의 인식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고 소장은 "일부 학교에서 위클래스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이상한 아이들이 가는 곳'처럼 인식된다"며 "이런 낙인 때문에 고위험군 아이들이 발길을 돌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위클래스는 전교생이 언제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적 쉼터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했다.

고 소장은 "자살 위기는 단절에서 오고 극복은 연결에서 온다"며 "화면 속 글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아이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사단법인 자살예방전국학교연합회 주최 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사진=사단법인 자살예방전국학교연합회) 2026.04.27.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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