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우 자살예방협회장 “자살은 ‘내몰린 죽음’…예방법 1조부터 바꿔야” [함께家]

기사등록 2026/04/02 08:00:00 최종수정 2026/04/02 08:04:25

[공동 기획-연결이 생명이다⑧]

"자살 예방 누구나 가능해…위험신호, 도움 요청일지도"

"사회 안전망·공동체 부족해…마음 챙기고 주변 돌봐야"

"보고 듣고 말하기…유가족, 문제 해결 주체 되기도 해"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이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4.01. ks@newsis.com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4872명, 하루 평균 40.6명꼴이었다.

지난달 한국자살예방협회장으로 취임한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일 뉴시스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살을 '내몰린 죽음'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며 "2011년 제정된 자살예방법(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은 1조부터 사회적 책임을 담는 방향으로 중대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협회장은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법 제1조를 바꿔 자살을 내몰린 죽음이라고 정의했다"며 "누구나 위기에 빠질 수 있고 구조돼야 하는데 구조되지 못한 사망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의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자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법과 제도 못지않게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자살을 남 일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자살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시점에 누구나 위기에 빠질 수 있고, 그때 누군가 도움을 주면 살 수 있어요. '나한테도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이 한 번의 생각 변화가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이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4.01. ks@newsis.com

◆'3만5000불 시대의 역설'…성장했지만 더 외로워진 사회

그는 자살 문제를 개인의 우울감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속도를 사회가 감당할 안전망과 관계의 밀도로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가족 사회에서 1인 가구로 대표되는 핵가족 사회로 변화했는데 우리는 아직 이 커다란 변화에 대응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거죠."

백 협회장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힘이 약해진 현실을 높은 자살률의 핵심 구조적 배경으로 봤다. 해방 이후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나라가 이제 3만5000달러 수준의 선진국이 됐지만, 가족의 힘을 대신할 사회적 안전망과 공동체는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취를 이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치가 사라졌어요. 경제적 가치만이 중요한 사회가 됐고요. 왜 성공했는지 의미를 찾기 힘든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는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걷기 위해 마음을 챙기고 주변 관계를 돌아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이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4.01. ks@newsis.com

◆ "죽고 싶다"와 "살려달라"가 함께 있다

28년 동안 그가 떠나보낸 환자는 14명, 2년에 한 명꼴이다. 자살 예방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분이 안타까웠지만, 맨 처음에는 굉장히 괴로웠어요. 겪은 일들을 복기하다 보면 우리가 진료실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느꼈죠."

그는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이렇게 했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공부와 현장 경험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됐다.

"자살의 경고 신호가 있는데 이걸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놓쳤구나 깨달았습니다."

이 같은 현장의 경험은 백 협회장이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와 연결하는 대응 원칙을 체계화한 이 프로그램은 학교와 공공기관, 기업 현장 등에서 생명지킴이 교육의 표준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

백 협회장은 자살 고위험군의 마음을 단선적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거의 대부분의 자살 고위험군은 양가감정에 빠져 있어요. '죽고 싶다, 이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 아니면 '살고 싶다, 저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마음이 다 있어요."

백 협회장은 자살 위험 신호를 사회가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울로 시작해서 자살 위기에 빠지면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낮에 졸고 일에서 실수하고 지각과 조퇴가 늘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행동만 보면 보통 게으르다고 생각하죠."

그는 "우리가 자살 경고 신호를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나쁜 행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정신 차리라고 몰아붙이는 말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는 순간, 당사자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믿음 속에 더 깊이 고립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이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4.01. ks@newsis.com

◆"누구나 생명지킴이가 될 수 있다"…시민의 참여가 해답

2년 임기를 시작한 백 협회장은 올해 협회의 중점 사업으로 ▲언론과 협력을 통한 사회 인식 개선 ▲자살예방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 ▲시민 참여 확대 등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날 뉴시스와 자살예방협회가 자살 예방과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언론과 민간이 함께하는 인식 개선 사업도 본격화됐다.

그는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생명지킴이 교육을 확산하고, 시민단체·기업과 협력해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살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하는 인공지능(AI) 기반 탐지 기술 개발에도 나서며 새로운 방식의 예방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백 협회장은 특히 자살 유가족을 단순한 지원 대상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은 가장 큰 고통을 겪은 분들이지만, 동시에 자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유가족의 증언과 사회 참여가 여론과 정책 변화를 이끈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상실의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바꿔내는 과정이 인식 개선의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살 예방은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위험 신호를 알아채고,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자살 예방의 출발점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남의 일로 두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백 협회장은 협회를 처음 시작했던 2009년을 떠올렸다. 당시 자살 예방 포스터를 지하철에 부착하려 했지만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자살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 '왜 멀쩡한 사람들한테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질책도 많았다"며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생각은 같다"고 했다.

"자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누구나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자살이 줄어듭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가 다시 강조한 해법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고통을 남의 일로 두지 않고, 누구나 말할 수 있으며,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사회. 백 협회장이 28년 동안 진료실과 현장을 오가며 붙잡아온 해답 역시 그 단순한 문장 안에 있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염영남(왼쪽) 공감언론 뉴시스 대표이사 사장이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열린 뉴시스-한국자살예방협회 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과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4.01. ks@newsis.com


◆ '함께家' 프로젝트는
뉴시스는 자살·고립·저출산 문제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로 바라보는 생명존중 공익 캠페인 '함께家'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절 속에 놓인 이들에게 공동체가 함께 가자는 뜻을 담아, 예방과 돌봄의 안전망을 넓히고자 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nowone@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