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유전'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구원투수로 주목
폐플라스틱에서 나프타 생산 '순환형 에너지' 부상
[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중동 사태 여파로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거점 공업단지인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주요 공장들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하면서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이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naphtha·납사)'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이 때문에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에서 다시 석유를 뽑아내 나프타 등을 생산하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사업이 석유 공급망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에 나프타 '품귀'…민생경제 흔들
29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로 국내 나프타 수입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발 물량이 끊기면서 나프타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여수산단 내 LG화학, 롯데케미칼이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여천NCC 등 주요 기업들도 감산에 돌입했다.
나프타에서 추출하는 에틸렌 공급이 줄어들자 비닐봉투, 포장재 등을 제조하는 중소 가공업체들은 당장 내달이면 원료가 바닥날 판이라며 아우성치고 있다.
실제 전국적으로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시작으로 건축 자재, 농사용 필름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등 민생 경제로까지 여파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 '쓰레기가 기름으로'…국내 '폐플라스틱 재활용' 현황
이 같은 공급망 위기 속에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Pyrolysis Oil)' 사업이 구원투수로 주목받고 있다.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추출하는 열분해유는 정제 과정을 거쳐 다시 나프타로 되돌릴 수 있어서 '도시 유전'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GS칼텍스 여수공장이 처음으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 정제 공정에 투입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연간 5만t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춘 가운데 향후 100만t 규모까지 확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여수산단 내 LG화학 등도 외부에서 조달한 열분해유를 원료로 투입해 친환경 재생 나프타를 생산하고 이를 다시 비닐 원료인 에틸렌으로 바꾸는 선순환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소 유화 업체인 에코크레이션 등도 전남 함평군 등 지자체와 협력해 폐비닐 수거에서부터 저온 열분해 설비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지자체·업계 '탄소중립 순환 경제' 클러스터 조성 서둘러야
전남도는 이번 나프타 품귀 사태를 계기로 수입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탄소중립 순환 경제 클러스터' 조성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여수와 광양을 중심으로 '폐플라스틱 수거-열분해-나프타 생산'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완성해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원료 자급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 27일 에너지안보환경협회는 3차 긴급 진단 보고서를 통해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나프타 쇼크 대응 방안으로 '순환형 에너지 안보(Circular Energy Security)' 전략을 제시했다.
협회가 제시한 대안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내부 자원화다.
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하루 약 7만5000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 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수입 원유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협회는 이를 '애국적 채굴'로 정의하고 폐기물 자원화를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에너지 확보 전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폐플라스틱 재활용은 환경 보호 차원에서 논의됐으나 이제는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생존의 문제"라며 "열분해유 정제 기술에 대한 규제 완화와 정부 지원이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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