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검진비' 준다는데…택배사는 참여 머뭇, 왜?

기사등록 2026/03/28 09:01:00 최종수정 2026/03/28 09:18:23

제주도, 건강검진비 지원 제도 도입 첫 추진

19일 실무협의회 등 정책 설계 마무리 단계

시행·확산은 택배사 참여 관건…강제성 없어

"택배사, 제주 사례 전국화 우려…비용 부담"

[제주=뉴시스] 제주도는 19일 오후 도청 백록홀에서 고용노동부, 의료원, 택배노동조합, 주요 택배회사 등이 참여하는 2차 실무협의회를 열고 택배노동자 건강검진비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했다. 도는 지난해 11월 제주지역 새벽배송 도중 사망한 고(故) 오승용씨 사건을 계기로 '택배노동자 건강검진비 지원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제주도 제공) 2026.03.28.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김수환 기자 = 택배노동자 건강검진비 지원을 놓고 제주도의 '사회적 합의 모델'이 추진되고 있지만 제도의 실효성은 택배사 참여 여부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강제력이 없는 구조 속에서 기업의 자발적 협조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8일 제주도 등에 따르면 도는 전국 최초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택배노동자 건강검진비 지원 제도는 공공과 민간이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다. 도와 택배사, 의료기관, 노동자가 각각 일정 비율을 분담하고 검진일에는 유급병가비도 지원한다. 시행 목표는 올해 하반기다.

도는 지난 19일 추진한 실무협의회를 토대로 정책 설계를 일정 부분 마무리했지만 실제 시행까지는 '택배사 참여'라는 넘어야 할 문턱이 남았다. 현재 일부 업체는 조건부 검토 입장을 보이고 있고 비용 부담과 계약 구조 등을 이유로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곳도 있다.

이번 제도는 합의에 기반한 구조로 법적 강제력이 없다.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부터 적용하는 방식이어서 참여 폭이 제한될 경우 정책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구조…'검진 기피' 배경
[서울=뉴시스] 박석운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2025년 10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택배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열린 전국택배노조, 故 쿠팡 택배노동자 추모 및 퀵플렉스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택배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검진 접근성'보다 '휴식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대체 인력 비용 구조가 꼽힌다. 기사가 하루 일을 쉬려면 배송 물량을 대신 처리할 인력을 구해야 하는데 이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기존 수익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이른바 '용차비' 부담으로 인해 휴식이나 검진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본사-대리점-기사로 이어지는 위탁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본사는 기사와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복지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고 실제 비용과 노동 강도는 현장에 집중되는 구조다.

노조 지부장의 경우 조합원 대응과 현장 물량 처리를 동시에 맡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대체 인력 확보 및 용차가 어려운 제주에서는 이 같은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강민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본부장은 "택배사가 이동형 버스검진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촉박한 배송 시간과 지연에 따른 불이익으로 실질적으로 활용할 여유가 없다"며 "실질적인 휴일 보장과 휴무에 따른 수익 감소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검진 가능한 환경 조성…관건은 택배사 참여
[서울=뉴시스] 2025년 1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진보당 제주 쿠팡 새백배송 택배노동자 유족 면담'에서 유족이 양손을 모아 잡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이번 지원 방안은 검진비 일부 지원에 그치지 않고 검진일 휴무와 소득 보전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기존 접근과 차이를 보인다.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조건까지 함께 설계한 셈이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을 호소하며 참여를 주저하는 모습이다. 비용 분담 자체보다 계약 관계가 없는 인력에 대한 지원이 향후 책임 확대나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택배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의 제도지만 사기업의 참여 확대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도는 기업 참여 유도를 위해 당초 설계한 건강검진비 지원 분담 비율을 도 35%·택배사 35%·의료원 20%·본인 10%에서 도 40%·택배사 30% 등으로 조정했다.

검진 당일 휴무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감소분을 보전하기 위한 유급병가비(제주 생활임금 기준 약 10만원) 역시 도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택배사의 부담을 완화했지만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은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서울=뉴시스] 2025년 11월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방지를 위한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서울지부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사회적 공감대 형성 필요…정부 관심 기대

제주 사례는 최근 확산하고 있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건강권을 제도적으로 다루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도가 원활히 도입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업 참여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참여 규모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는 30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식 제주 방문과 타운홀 미팅이 예정된 만큼 정부 차원 메시지가 더해질 경우 기업 참여를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상욱 공인노무사는 "택배기사들의 평일 업무와 주말 병원 휴진 등을 고려하면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는 검진을 위한 실질적인 휴무 지원이 병행돼야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다"며 "택배 본사 입장에서는 제주 사례가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비용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민감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정 노무사는 "특히 최근 노조법 개정안 등과 맞물려 택배업계의 노동 환경이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된 만큼 본사에서도 기사들의 처우와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시기에 제주도가 갈등을 잘 풀어내 전국적인 건강 증진 시범 케이스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noteds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