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쿠데타 지원 이후 반미 감정
1979년 혁명·인질 사태로 국교 단절
핵 합의·파기 거쳐 올해 전면전 위기
[세종=뉴시스]임하은 기자 =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번 공습은 수십 년간 누적된 양국의 적대관계의 연장선 상에 있다. 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정리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양국이 동맹에서 적국으로 변모한 흐름을 짚어본다.
◆1953년 미·영 정보기관 주도 쿠데타와 친미 정권 복귀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정보기관은 195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를 축출하는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후 친서방 성향의 국왕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훗날 이란 내 반미 정서가 시작된 계기로 평가된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미 대사관 인질 사태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축출되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같은 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점거돼 미국인 52명이 444일간 인질로 억류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국의 국교는 단절됐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이란 여객기 참사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간접 지원하며 이란을 견제했다. 1988년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민간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해 격추하면서 290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며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2002년 '악의 축' 규정과 핵 갈등 본격화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비슷한 시기 이란의 비밀 핵시설 존재가 폭로되면서 국제사회에서 핵 갈등이 본격화됐다.
◆2015년 핵 합의(JCPOA) 체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은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받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서명했다. 양국 관계 개선 기대가 높아지던 시기다.
◆2018~2020년 합의 파기와 솔레이마니 사망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정책을 재개했다. 2020년 1월 미군은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습으로 암살했다.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했다.
◆ 2025년 6월 '한밤의 망치' 작전 감행
미국과 이스라엘 공군은 지난해 6월12일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합동 기습 작전인 '한밤의 망치(Hammer of Midnight)'를 실시했다. 당시 대규모 정밀 공습으로 나탄즈 지하 농축 시설과 포르도 핵 시설의 원심분리기 등 핵심 설비가 대거 파괴됐고, 이란의 핵 무기 제조 능력을 수년 이상 퇴보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작전은 이란 내 강경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26년 미·이스라엘 공습…전면전 위기 고조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그 일가족도 사망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대리전과 국지적 충돌이 직접 충돌로 번지면서 양국은 통제 불능의 전면전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rainy7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