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글이 신청한 축척 1대 5000 지도 국외 반출 첫 승인
보안시설 블러·좌표 제한 조건…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는 제외
관광학계 "외국인 편의 개선 기대" vs 공간정보업계 "산업 생태계 훼손"
[서울=뉴시스]윤정민 정유선 기자 = 정부가 구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허가했다. 고정밀 지도가 상업 목적으로 한반도 밖으로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구글 지도가 한국에서 제한돼 왔던 자동차·도보 길찾기, 차로·고도 정보 기반 안내, 3차원(3D) 지도, 실내 지도 기능 등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27일 오전 관계부처·기관으로 구성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축척 1대 5000 수치지형도 데이터 반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공간정보관리법)에 따르면 축척 1대 2만5000 미만 대축척 지도는 정부 심사를 거쳐야 반출할 수 있다.
이에 구글은 지난해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 축척 1대 5000 수치지형도 데이터 국외 반출 허가 신청서를 냈다. 구글은 글로벌 서버 기반의 통합 지도 인프라 구조상 한국 정밀 지도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이전하지 않으면 자동차·도보 길찾기 등 핵심 기능 구현이 어렵다고 설명해 왔다.
정부는 구글에 ▲군사·보안시설 비식별화(블러) 처리 ▲위·경도 좌표 노출 제한 ▲서버, 사후 관리 체계 보완 등을 요구했다. 이번 승인에는 정부가 제안한 조건 대부분을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우선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부 검토·확인을 거친 제한된 데이터만 해외로 반출하도록 했다. 내비게이션·길찾기 구현에 필요한 기본 바탕지도, 도로 등 교통 네트워크 정보로 범위를 한정하고 등고선 등 안보상 민감 정보는 제외하기로 했다.
보안 사고 발생 시 대응 체계도 마련한다. 정부와 사전 협의를 통해 '보안사고 예방 및 대응 프레임워크'를 수립하며 긴급 상황 시 기술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 지도 전담 책임자(LRO)를 국내에 상주시켜 상시 소통 채널을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정부가 그동안 요구해 온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는 최종 조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국내 제휴기업의 서버를 활용해 가공·검증 체계를 유지함으로써 국내법 적용과 사후 통제권을 확보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협의체는 "군사·보안시설 노출 및 좌표 표시 문제 등 기존 안보 취약 요인을 기술적 조치로 완화했다"며 "국내법이 적용되는 국내 서버에서 민감 정보를 처리한 뒤 반출하는 구조를 통해 사후관리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광학계 "외국인 편의 개선…관광산업 파급효과 기대"
구글은 2007년 처음 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요청한 이후 약 19년 만에 이번 승인을 받게 됐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정보 부문 부사장은 이날 "한국에서 구글 지도의 역량을 선보일 기회를 갖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결정은 중요한 진전이며 구글은 구체적인 서비스 구현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 및 국내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관광업계·학계도 정부 결정에 전반적으로 환영 입장을 보냈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국에서 사용하던 구글 지도를 한국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관광객 편의성과 소비 활동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참여해 2029년 '입국 3000만명 시대' 목표 달성을 위한 관광업계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 중 지역 관광 활성화에 있어 글로벌 지도 서비스 접근성 등이 걸림돌로 지목된 바 있다. 구글 지도가 활성화될 경우 외국인 관광객이 수도권을 넘어 지방 소도시·농어촌 지역까지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어 관광 수요의 지역 분산과 체류 시간 확대, 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외국인들이 지방으로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안내 체계의 부재였다"며 "구글 지도 활성화는 외국인의 편리한 관광 측면에서 굉장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협의체 역시 이번 승인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편의를 증진하고 지도 서비스 기반의 경제·기술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간정보업계·학계 "공론화 없이 결정…산업 생태계 훼손 우려"
하지만 공간정보 업계·학계는 이번 결정이 국내 공간정보 산업 전반에 심각한 구조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즉각적인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대한공간정보학회 등 6개 유관 기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구글이 보완 신청한 내용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에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고정밀 지도가 자율주행·디지털 트윈 등 국가 핵심 인프라의 기반 데이터인 만큼 이번 반출이 국내 중소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종욱 대한공간정보학회장(안양대 스마트시티공학과 교수)은 "관세는 협상을 통해 변경 가능하지만 고정밀 지도는 한 번 반출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결정"이라며 안보와 산업 주권 침해를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특히 국내 공간정보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과 상생 방안 마련을 구글 측에 권고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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