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출신 도르카스 "모든 게 막막했던 시기"
난민 여성들 돌봄·생계 공백 사각지대에 놓여
전문가 "난민 여성 자립 위해 제도 정비 절실"
[안산=뉴시스]전상우 수습 기자 =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있는 날은 일요일뿐이에요."
지난달 2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글로벌다문화센터에서 만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응갈룰라 왕갈라 도르카스(41)는 잠시 말을 멈춘 뒤 고개를 떨궜다. 난민으로 한국에 온 지 15년이 넘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버티는 하루의 연속이다.
난민 인정을 받기 전의 삶은 더 고단했다. 도르카스는 2010년 한국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인정까지는 8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그는 외국인등록증조차 없이 출국명령서만 손에 쥔 채 살아야 했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합법적인 취업이 막혀있던 탓에 의료·복지 서비스 접근 역시 쉽지 않았다. 현재는 난민 인정을 받아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그가 겪은 지난 시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상처로 남아 있다.
그는 "일도 할 수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전반적인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며 "돈이 없어 아이가 먹고 싶은 걸 줄 수도 없었고, 갖고 싶은 걸 가질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두 차례의 난민 신청 끝에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아 F-2(거주) 비자를 취득한 도르카스는 한국에서 만난 콩고 출신 남편과 함께 14살, 11살, 6살 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 F-2 비자는 국내 장기 체류가 가능한 체류 자격으로, 취업과 학업에 별다른 제약이 없어 영주권을 제외하면 가장 안정적인 체류 비자로 꼽힌다.
◆일도, 보험도 허락되지 않았던 삶
도르카스가 한국에 왔을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생계였다.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언어는 큰 장벽이었고, 난민 신청자 신분으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은 당장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난민 신분에 더해 육아 부담까지 짊어진 여성들은 일자리에서 큰 제약을 겪는다. 도르카스는 "업무 시간은 보통 12시간 정도"라며 "해고될까 두려워 근무 시간을 조정해달라는 요청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도르카스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아이가 아팠음에도 돈이 부족해 치료할 수 없었던 순간을 꼽았다. 그는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아이가 아파 대학병원을 찾았던 날의 기억을 전했다. 당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취업은 제한됐고,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보험이 없으면 치료를 받기 전에 100만원을 먼저 내야 한다고 했는데 돈이 없어 너무 무력했어요. 부모로서 스스로가 약하고 책임감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난민이라는 이유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죠."
◆난민 여성들이 마주한 제도 공백…"교육·직업훈련서 배제"
도르카스는 난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난민 여성은 체류 자격 문제로 교육·직업훈련에서 배제되기 쉽고, 돌봄 부담을 고려한 취업 연계 제도도 사실상 부재해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이민자 여성에게는 교육과 취업을 잇는 제도가 있지만, 난민 여성은 대상이 아니다"며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난민 여성도 교육을 받고,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도르카스씨는 난민 여성들을 위해 보탬이 되고자 2020년부터 난민 여성 커뮤니티인 '와이즈우먼'을 운영하고 있다. 와이즈우먼은 제도적 지원에서 배제된 난민 여성들이 고립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와이즈우먼에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난민 여성들이 모여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있고,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도 있다. 그는 "미술 활동과 같은 모임을 할 때면 다들 표정이 달라진다"며 "잠시라도 집과 일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도르카스는 사회적 인식 또한 난민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뉴스도 보며 난민을 접하지만, '난민은 나쁜 사람' '우리 세금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만 갖고 있다면 공존하기 힘들다"며 "국가가 먼저 난민을 환영해야 한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세금도 내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먼저 내야만 사회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호소했다.
◆난민 보호 출발점은 보육·취업 지원
현행 난민 제도는 신청 단계부터 생계·보육·취업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난민들을 사회의 가장 취약한 위치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는 어린이집 등 보육 지원에서 배제돼 있어 육아를 병행하며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정부 차원에서 난민 여성들이 육아와 생계를 병행할 수 있도록 공공 일자리 등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취업 지원 체계에 난민 여성도 포함하고, 취업을 단순한 허가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실제로 노동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난민들의 자립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한국 난민 제도의 한계로 난민들이 장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난민으로 인정받아 도르카스처럼 F-2(거주) 비자를 취득하는 비율은 지난 30년(1994~2024) 누적 기준, 2.7%에 불과하다.
김진수 피난처 활동가는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진행된 한국 난민 포럼에서 "단기 비자로 입국한 난민들은 짧게는 3일 이내에 난민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구조"며 "난민 재신청 등으로 체류 자격이 제한되는 경우도 많아 그동안 체류는 가능하나 여타 권리를 누릴 수가 없어 생존권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홍석표 로펌공익네트워크 변호사도 "한국에서 1년에 접수되는 난민 심사 건수는 수천건에 이르고 있지만 인정 사례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안다"며 "한국의 법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난민들이 언어 소통의 실패로 쉽게 법률 위반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런 부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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