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전 간부 "후보들 신세 지게 해야" "보험드는 것"…李·尹 캠프 모두 접촉

기사등록 2025/12/12 18:41:07

통일교 전직 간부들 통화 녹취록 확보

대선 전 보수·진보 유력 인사 다수 거론

한학자, 윤석열 지지 노선에…적극 지원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선물을 전달하고 통일교의 현안을 청탁한 의혹을 받는 윤영호 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세계본부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5.07.30.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박선정 오정우 김정현 최은수 기자 =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교 전직 간부들이 여야 대선 후보 진영을 동시에 접촉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 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가 나왔다.

12일 뉴시스가 입수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과 통일교 간부 이모씨의 통화 녹취록에는 "후보들 신세를 지게 해야 한다" "보험을 드는 것"이라는 등의 표현과 함께 통일교가 여러 방식의 지원을 통해 여야 대선 후보들과 접점을 만들려 했다는 인식이 담겼다.

녹취록은 윤 전 본부장과 이씨가 2022년 대선을 앞둔 시기인 1월 25일, 2월 7일, 2월 28일 등 세 차례에 걸쳐 통화하며 정치권 인물 접촉과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한 내용이다.

1월 25일 통화에서 두 사람은 당시 통일교가 준비 중이던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에 해외 주요 인사들과 후보들의 화상 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윤 전 본부장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을 거론하며 대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된 거는 힐러리는 어느 정도 될 것 같다"며 "비용이 5만불, 10만불 레벨이 아닐 수 있으니 미국에서 처리하면 되니까 돕는 걸로 하자"고 했다.

"어프로치(접근) 하는 명단을 저한테 주시면 강선우 의원한테 넘기자"는 이씨의 말에 윤 전 본부장이 성사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자 이씨는 다시 "진짜 되는 사람은 정진상(전 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쪽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명단은 당시 이재명 후보와의 대담을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강 의원과 정 전 실장 모두 통일교 측과 만나거나 별도로 접촉한 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담도 성사되지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여권에 접촉할 연결고리로 '두 라인'을 활용했다며 "하나는 직접 청와대 라인"이라고도 언급하기도 했다. 야권의 경우 '3개 라인'을 지목하며 윤석열 당시 후보의 기획 플래너까지 접촉했다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은 이런 연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문제를 두고 "처리를 해줘야 끈끈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직접적인 정치자금 제공 대신, 행사 개최나 해외 인사 섭외 비용을 통일교가 부담함으로써 여야 후보 진영에 '빚진 관계'를 만들어 두려 했다는 취지다.

다만 당시에는 여야 모두 리스크를 고려해 통일교를 거부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는 연결고리로 지목된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언급하며 "다 곁다리고 메인은 결국 후보를 누가 움직이느냐"라며 여야에서 모두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찾아 접촉해야 한다는 취지를 전하기도 했다.

통일교는 대선 직전까지도 여야 대선후보 모두와 인연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한학자 총재가 보수 후보였던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로 하면서 노선을 정하고 적극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재명 당시 후보와 한학자 총재와의 만남도 불발됐다는 대목이 녹취록에 등장한다.

윤 전 본부장은 이씨에게 "이재명 쪽에서도 어머님(한 총재)을 보려고 전화가 왔다. 그런데 어머님 의도야 클리어한데 그걸 다시 우리가 브릿지(연결) 할 수 없다"며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시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통일교가 한 쪽 당을 공식적으로 밀어줬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썼다고도 했다. 그는 "잘못했다가 5년이 괴로워진다. 5년 뒤에 다시 우리가 영향을 주려면 플랫폼,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다 바뀌어여 한다"며 선거 이후에도 정치권과 연결고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윤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 측 자금이 정치권 인사 5명에게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거론된 인사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정동영 통일부 장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으로, 여야가 모두 포함됐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진술이 특검법상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윤 전 본부장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전 장관과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등 3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 금지 조치했다. 다만, 거론된 인사 중 정 장관과 나 의원은 입건되지 않은 상태다.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은 모두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전 전 장관은 "불법적인 금품 수수는 없었다"며 장관직 사의를 표명했다.

임 전 의원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금품을 수수한 적 없다.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 소환 등 조사를) 빨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의원 또한 "윤 전 본부장과 만나거나 전화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통일교 측은 이번 사안을 윤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고 선을 그었다. 전날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에서 정치 권력과 결탁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원해 이익을 얻으려는 계획이나 의도를 가진 적 없다"며 "윤 전 본부장의 행위는 개인의 독단적 일탈이지만, 차단하지 못한 것은 조직의 관리 책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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