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월간 10대 방문국 중 9개국 통화 가치 상승
달러 5.56%, 위안 6.33%, 태국 바트 5.89%, 베트남 동 5.31%↑
유로 4.77%, 파운드 3.49%, 스위스프랑 5.11%↑…엔화만 하락
수출·국내 관광은 호조지만…급격한 원화 평가절하 우려 커져
[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최근 환율 급등은 달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원화 가치가 급락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대다수 주요 통화의 대(對)원화 환율이 크게 올랐습니다. 얼마 전 원화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10월 말 기준 89.09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8월 말(88.88) 이후 최처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11월 환율 급등세를 감안하면 이 지수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가계 생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수입물가가 올라 생활비 부담이 커질 뿐만 아니라 해외에 방문할 때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모처럼 만에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분들에게는 환율 상승이 악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인들이 여행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방문국 환율이 대부분 올랐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3개월간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10개국 중 9개국 통화의 대원화 환율이 상승했습니다. 상승률은 미국 달러 5.56%, 중국 위안 6.33%, 홍콩 달러 5.78%, 대만 달러 3.00%, 태국 바트 5.89%, 싱가포르 달러 4.51%, 말레이시아 링깃 7.93%, 필리핀 페소 2.59%, 베트남 동 5.31%로 나타났습니다. 유일하게 일본 엔화만 0.61%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원화 대비 엔화 가치도 11월 한 달 만을 떼어서 보면 1.21% 상승했습니다.
원화는 최근 다른 글로벌 주요 통화와 비교해 유독 큰 폭으로 평가절하됐습니다. 지난 3개월간 유로화는 4.77%, 영국 파운드화는 3.49%, 캐나다 달러는 3.40%, 스위스 프랑은 5.11%, 호주 달러는 5.44%씩 대원화 환율이 상승했습니다. 인도 루피(4.13%), 멕시코 페소(7.36%), 브라질 헤알(7.06%) 등 신흥국 통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최근 원화만 유독 이렇게 가치가 급락한걸까요? 서학개미들의 해외 투자 증가, 국민연금 모수개혁 이후 해외 투자 수요 확대, 저성장으로 인한 외화 자금 유입 감소, 한미간 금리차 등이 꼽힙니다. 또 한미 관세 합의에 따라 향후 10~20년간 수천억 달러의 외화가 한국에서 유출될 예정인 점도 국내 외환시장 수급 상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양면성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가계나 수입 업체는 비용 부담이 커지지만 수출이나 국내 관광 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국내 관광 산업은 환율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통계'를 보면 10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73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7% 증가했습니다. 10월까지 누적 외국인 관광객 수는 1584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나 급증했습니다. 지난 3월 이후에는 매달 관광객 수가 150만명을 넘고 있어 올해 목표치인 1850만명 돌파에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수출도 호조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11월 수출은 610억4000만 달러(89조5029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8.4% 증가했습니다. 1~ 11월 누적 수출은 6402억 달러를 기록해 올해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게 중론입니다. 환율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제 주체들이 환전이나 지출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집니다. 해외여행 계획은 미룰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당장 해외에서 사업을 하거나 유학하시는 분들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또 원화 약세는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가면 기업들이 외국계 금융기관들과 체결한 '환율(FX) 트리거' 계약이 발동해 '제2의 키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환 당국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고 쏠림 현상을 억제할 수 있는 기민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수출과 국내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거시경제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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