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지금 인상주의의 계절…액자까지 작품[박현주 아트클럽]

기사등록 2025/12/06 06:00:00 최종수정 2025/12/06 07:44:25

세종미술관, 샌디에이고미술관 100주년 특별전

예술의전당,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세잔·르누아르’

국중박, 메트 로버트 리먼 컬렉션 ‘빛을 수집한 사람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복숭아’.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올겨울 서울은 인상주의의 수도다.

서울 주요 미술관들이 동시에 대형 인상주의 전시를 선보이며, 도심 전체가 보기 드문 ‘인상주의 시즌’에 돌입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이 겹친 것은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서울이 아시아 미술 전시 허브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신호”라고 평가한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100주년 전시 전경. 세종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문화회관, 600년을 관통하는 서양 회화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는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으로, 65점의 서양 회화가 최초로 대규모 해외 반출됐다.

특히 100년 동안 외부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상설 컬렉션 25점이 포함돼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1520년경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 등 르네상스부터 초기 모더니즘까지 600년 회화의 변화를 따라가는 구성이 특징이다.

세종미술관의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는 단숨에 16세기 르네상스의 온도로 바뀐다. 단순한 명작 나열을 넘어 인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서양 회화의 빛·구도·사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흐름’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2월22일까지 열린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전경. 예술의전당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의전당, 르누아르와 세잔의 ‘두 개의 빛’
예술의전당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르누아르’는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품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전시다.

유화 51점과 사진·영상 70여 점을 운송하기 위해 비행기 4대가 투입되는 등 전례 없는 규모를 갖췄다.

이번 전시는 인상주의의 두 대표 화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의 작품을 주제별로 병렬 배치해 비교 감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르누아르는 부드러운 색채와 인간의 온기를, 세잔은 형태·질서를 강조하며 회화의 구조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두 화가가 인상주의 안에서 얼마나 다른 시각언어를 구축했는지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내년 1월까지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로버트 리먼 컬렉션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갖고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선보이고 있다. 2025.11.13. pak7130@newsis.com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의 ‘기술과 실험’
국립중앙박물관의 ‘빛을 수집한 사람들’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서 회화·드로잉 81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 전시의 강점은 ‘명작 감상’보다 인상주의가 어떤 기술적 실험을 통해 탄생하고, 어떻게 초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졌는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연구형 구성에 있다.

리먼 컬렉션은 두 세대에 걸친 수집가의 안목이 축적된 컬렉션으로, 프랑스 미술과 인상주의의 핵심 변화를 포착해 온 사적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전시는 고갱·르누아르·세잔 등의 작품을 통해 색은 어떻게 해체되고, 빛은 어떻게 분절되며, 형태는 어떻게 재구성되었는가를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실에서 내년 3월 14일까지 열린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로버트 리먼 컬렉션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갖고 폴 세잔의 작품 '목욕하는 사람들'(왼쪽)을 선보이고 있다. 2025.11.13. pak7130@newsis.com


◆왜 지금, 인상주의인가
세 전시가 동시에 열린 것은 서울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첫째, 해외 주요 미술관들이 한국을 아시아 관람객의 중심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출이 어려운 작품들이 한국을 향하는 사례가 늘며 전시 유치 경쟁에서도 서울의 비중이 커졌다.

둘째,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인상주의 회화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감정·빛·위로의 요소를 가진 인상주의는 위기 시기일수록 관객 유입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셋째, 세 전시의 구성 자체가 “이번이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렵다”는 희소성을 가진다. 관계자들 역시 “동일 구성으로 재편성이 불가능한 수준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100주년 전시 전경. 세종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어떤 전시를 봐야 할까
전체 미술사 흐름을 보고 싶다면 → 세종문화회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의 600년 대서사를 파악할 수 있다.

인상주의 핵심 화가를 비교하고 싶다면 → 예술의전당. 세잔과 르누아르의 빛·구조·감정의 차이를 읽는 자리다.

인상주의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 국립중앙박물관. 빛·색·형태의 원리를 해부하는 연구형 전시다.

지금의 서울은 유럽 미술관이 선택한 하나의 ‘정거장’이다.

세종에서 인상주의의 뿌리를 보고, 예술의전당에서 인상주의의 두 심장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상주의의 기술을 본다면 유럽 미술관에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로버트 리먼 컬렉션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갖고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의 작품 '가면무도회 참가자들'을 선보이고 있다. 2025.11.13. pak7130@newsis.com


그리고 놓치기 쉬운 즐거움이 하나 더 있다.

세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액자 자체가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다.

19세기 특유의 장식적 목재 프레임은 오늘날의 미니멀한 액자와 달리, 화면의 빛과 호흡을 함께 품어내며 또 하나의 시각적 층위를 만든다. 액자까지가 작품으로 느껴진다.

올겨울 서울은 그 자체로 ‘인상주의 올인원 패스’다.

19세기 유럽 회화의 가장 깊은 결을 서울 한가운데서 경험하는 일, 이 또한 K-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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