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로 입찰 따낸 뒤 공사비 올리거나 싼 자재 사용
홍콩 건물 20% 50년 이상, 개보수 업체엔 ‘금광’
담합·가격 인상 공모 등 비리 근절 위해 처벌 강화 등 필요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홍콩에서 발생한 고층 아파트 화재로 70년만에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그 배경에는 개보수 업체의 불법과 부패, 탐욕 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 ‘시장 전체가 부패했다’는 기획 분석에서 이번 화재의 바탕에는 입찰 담합과 급등하는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물 개보수 업계의 비리가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와 전직 내부 관계자들은 노후화된 고층 건물이 많아 개보수가 필요한 홍콩은 그런 범죄 조직에게는 ‘금광’같았다고 지적했다.
◆ 화재 아파트 보수 비용 1년 만에 2배 이상 올라
2일 정부는 지난달 26일 발생한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와 관련한 입찰 담합 의혹 등 시스템적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판사를 위원장으로 독립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매년 30년 이상 된 약 600채의 건물에 전문 컨설턴트를 고용해 건물을 검사하고 필요한 수리를 하도록 명령한다.
이번 화재 아파트도 2016년 의무 검사 제도에 따라 보수 명령을 받았다.
‘웡 푹 코트’의 개보수 예산은 2023년 9월 예비 입찰 분석 당시 1억 5200만 홍콩달러(약 285억원)에서 지난해 3억 3600만 홍콩달러(약 631억원)로 급증했다.
개조 공사는 외벽 모자이크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포장하는 작업이 포함됐으며 배수 및 방화 시설 개선을 위한 비용이 추가됐다.
홍콩에서는 개보수 비용이 ‘비리 사슬’속에서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고 SCMP는 전했다.
◆ 컨설턴트 등도 공모한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도
2016년 샤틴 가든 비스타에서 진행된 2억 6000만 홍콩달러 규모의 프로젝트에는 소유주 1인당 20만 홍콩달러에서 30만 홍콩달러를 지불했다.
당시 협력업체 관계자 한 명이 부동산의 법인 소유자 회장, 관리회사 대표, 컨설턴트 등 6명과 공모해 공사비를 부풀린 혐의를 자수해 징역 35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공모자들에게 4500만 홍콩 달러를 지급했다.
‘부동산 소유자 입찰 담합 방지 연합’의 설립자 치우 얀로이에 따르면 주택 유지 관리 분야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정행위는 컨설팅 회사가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확보한 후 관련 계약자와 협력해 실제 비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것이다.
고가의 개보수 비용에는 불필요한 추가 작업과 값비싼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다 싼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번 화재 아파트의 경우 대마무 비계를 감싸는 그물망의 경우 바닥이 아닌 곳에 사용된 그물망은 규격품이 아닌 값싼 제품으로 난연성이 떨어져 불이 순식간에 옮겨 붙은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도시재개발청의 전자 입찰 도입 등도 역부족
치우 대표는 ‘도시재개발청(URA)’이 2016년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나섰으나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URA는 독립적인 제3자 자문업체와 전자 입찰 플랫폼을 통해 유지 관리 작업을 조직하고 기술적 조언과 비용 견적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한 비용 상승을 막고 있다.
치우 대표는 “치명적인 결함은 절차가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최종 승인은 소유주 조합의 총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만약 과반수를 장악하기 위해 위임장을 사용하는 등 조작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한 표를 매수하는 것만으로도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되어, 부정한 돈이 양질의 돈을 몰아낸다”며 “문제는 제대로 된 기업들이 시장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킹 밸류 부동산 투자 컨설턴트의 최고 경영자 리키 웡은 도시의 노후화된 주택 재고가 많은 것이 부정직한 건설업체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금광이라고 말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약 9600개의 개인 건물, 즉 전체 건물의 5분의 1 이상이 지은 지 50년 이상 된 건물이었다.
웡은 “홍콩의 많은 건물이 40~50년이 되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업체들이 개보수 시장을 ‘뚱뚱한 돼지고기’, 즉 엄청나게 수익성이 좋은 고기 덩어리로 여긴다”며 “업체들은 일부라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찰 조작을 위해 동일한 프로젝트에 입찰하기 위해 여러 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고 여러 회사는 동일한 사장 집단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잘못된 관행 10∼20년 지속, 대형 비극후에야 현실 깨달아
웡은 잘못된 관행이 10~20년 지속됐지만 이번 화재와 같은 대규모 비극을 겪은 뒤에야 대중들이 위험한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홍콩 재건축 실무자 연합 회장인 차우린킨은 업계에 약탈적 가격 책정을 이용해 ‘깃발을 꽂고 사업을 빼앗는’ 계약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단 싸게 입찰해 계약을 따낸 뒤 수리 비용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치우 대표는 “모두가 최저가를 추구하다 보니 시장 전체가 썩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와 간접비를 포함해 제대로 된 작업을 하려면 1만 홍콩달러가 들지만 누군가 8500 홍콩달러에 작업을 맡긴다면 품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쓰다가 이번처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건축안전 연구소 빈센트 호 쿠이입 소장은 홍콩에는 특정 이해관계에 얽힌 조직을 분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입찰 담합과 관련자들의 공모 등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벌금과 징역형 강화 등 정부의 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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