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밝혀진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진범…"저승까지 추적"

기사등록 2025/11/21 12:05:31 최종수정 2025/11/21 20:35:44

2006년 2월 강간치상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피의자

기술 발전으로 얻은 연쇄살인 피의자 유전자와 일치

범인 특정 후 보완수사로 연쇄살인 사건도 재구성해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신재문 팀장이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양천구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범인 특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1.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잇따라 발생한 장기미제 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두 건의 살인 발생 20년 만에 피의자 전모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전씨는 지난 2015년 7월 4일 암으로 사망해 불송치(공소권 없음) 종결 예정이다.

전씨는 휴일이던 2005년 6월 6일 관리인으로 있던 신정동 한 빌딩 내 병원을 찾았다가 문이 닫혀 있어 귀가 중이던 20대 여성 B씨에게 '출구를 안내하겠다'며 지하 1층 창고로 끌고 가, 금품을 강취하고 성폭행한 뒤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5개월가량 지난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같은 빌딩을 방문한 40대 여성 C씨를 같은 방법으로 납치하고, 폭행·물품 강취·성폭행 등을 저지른 후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전씨는 B씨 사체에 쌀 포대 두 개를 씌우고 노끈으로 묶은 뒤 본인 소유 승용차에 싣고 한 초등학교 우측 노상 주차장에 유기한 혐의도 받는다. 또 전씨는 C씨 시신도 비닐과 돗자리에 감싸 끈으로 결박한 뒤, 승용차로 운반해 주택가 노상 주차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전씨는 2차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06년 2월 동일 장소에서 유사 수법 성범죄를 시도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2009년까지 교도소에 갇혔다. 하지만 2005년 연쇄살인 발생 수사 때나 2006년 미수 사건 때는 증거가 부족해 서로의 연관성을 추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범행 당시 60대 초반이었지만, 180㎝의 키로 단단한 체격을 가졌다. 군 복무 시절 수사부서에 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다. 또 성범죄 전력을 포함해 전과가 다수 있었다.

초기 수사를 맡았던 서울 양천경찰서는 사건 직후 3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수사를 했었다. 현장 증거물 감식· 유전자 감정·전과자 대조·병의원과 공사 현장 탐문 등을 진행하고, 수배전단 총 9000매를 배포하는 등 수사를 8년간 이어갔으나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결국 연쇄살인 사건은 2013년 6월 28일 미제사건으로 관리 전환됐다.

[서울=뉴시스]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2005년 발생했던 부녀자 연쇄살인의 범인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제공) 2025.11.21. photo@newsis.com


이 수사를 2016년 신설된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이어받았다. 관 수사 기록 및 증거물을 인수한 후 신정역 일대 유사 사건과 방송제보 등 다양한 첩보·제보를 검토했다. 사실 여부 검증도 했다.

또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했다. 2016년 처음으로 피해자 속옷에서 유전자가 검출됐지만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는 '혼합 DNA'였다. 수사팀은 2020년 유전자 분석기법이 발전됨에 따라 두 살인 사건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건의 살인이 한 명에 의한 연쇄살인임을 확인한 셈이지만, 아직 피의자를 특정할 수는 없었다.

이에 경찰은 현장을 수백 회 탐문하고 동일수법 전과자의 통화내역을 분석하기도 했다. 2005년 당시 서남권 공사 현장 관계자나 신정동 전·출입자 등 총 23만1897명을 수사 대상자가 됐다.

경찰은 약 23만명 중 범행수법·범행시간·직업·거주형태 등 우선순위에 따라 전국에 있는 1514명의 유전자를 채취하고 대조했다. 조선족일 가능성을 두고 중국 국가 데이터베이스 대조 등 국제공조 수사를 하기도 했지만, 일치하는 유전자를 찾지 못해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경찰은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공소권이 없음에도 사망자 56명으로 후보군을 확대했다. 사건 당시 신정동 한 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했고 동일수법 전과를 가진 용의자 전씨가 특정됐다.

하지만 전씨는 당시 이미 시체를 화장 처리해 유골 확보가 어려웠고, 생전 작성 서류나 접촉 물건에서도 유전자를 검출하기 어려웠다. 연쇄살인 증거에서 얻게 된 유전자와 전씨 유전자가 동일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서울=뉴시스]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2005년 발생했던 부녀자 연쇄살인의 범인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범행 장소로 추정되는 한 빌딩 지하에서 경찰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제공) 2025.11.21. photo@newsis.com


경찰은 다시 전씨와 관련된 경기 부천·광명·시흥 지역 병의원 및 검체 검사 업체 등 40개소를 탐문수사했다. 전씨의 세포 조직을 아직 한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두 차례 압수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정한 결과 전씨와 연쇄살인 사건 증거물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답변을 지난 7월 9일 받았다.

총 1570명의 유전자 대조 끝에 전씨가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된 것이다. 이후 경찰은 관련자 40명 등을 조사하고 다각적 수사로 범행 경위 등도 확인했다.

전씨가 근무한 18개 근무처를 탐문해, 시체 유기 장소 인근에서도 관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확인하고 관련 범죄 여부를 확인했으나 추가 범행은 발견되지 않았다.

전씨와 함께 교도소에 있던 재소자도 탐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살인사건의 피의자여야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언급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후 전씨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던 3차 미수 사건의 피해자를 재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범행 장소를 압수수색하고 합동감식한 결과 피해자 시체에서 발견된 곰팡이·모래 성분과 전씨가 근무한 빌딩 지하의 환경 유사성을 확인했다. 3차 미수 사건을 토대로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전모도 드러나게 된 셈이다.

신재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4팀장은 "앞으로도 경찰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미제 사건의 진실을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끝으로, 오랜 시간 경찰을 믿고 기다려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은 한 방송을 통해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2006년 5월 당시 전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납치 미수 사건(엽기토끼)과는 관련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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