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갈등①]논란 속 '하나의 중국'…다카이치가 건드린 회색 지대

기사등록 2025/11/22 06:00:00

중국, 수산물 이어 희토류·비자 카드 '강공' 가능성

대만 둘러싼 인식차, 다카이치 발언으로 표면화

[경주=AP/뉴시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5.11.21.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권 개입 가능성' 발언에 중국이 발언을 철회하라며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절차에 추가 안전성 증명을 요구해 사실상 수입을 멈춘 데 이어 이달 예정됐던 장관급 외교 채널까지 중단시키며 발언 철회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발언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이 구조적 장기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수산물·장관회의 연기…대중 보복 수단 넓히는 중국
[경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경북 소노캄 경주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중 국빈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1.21. bjko@newsis.com

2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 측은 지난 18일 우리 정부에 '2025 한중일 문화장관회의'의 '잠정 연기'를 알려왔다.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는 2007년부터 3국이 매년 순회 개최해온 고위급 문화 협력 채널로, 3국 간 문화 교류의 상징적 행사로 평가돼왔다. 중국 측은 우리 문체부에 연기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이번 회의 취소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권 개입 가능성' 발언 때문임을 분명히 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이 "중국 인민의 감정을 해쳤고 전후 국제 질서를 부정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한중일 협력의 분위기와 기초가 훼손됐고 회의 개최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직격했다.

중국은 앞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절차에서 추가 방사능·안전성 증명을 요구해 사실상 수입을 멈춰 세운 상태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발언 철회가 없으면 수산물보다 더 강한 조치도 가능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음 단계 카드로는 일본이 첨단산업·방위산업에 의존하는 희토류 수출 규제, 일본인 대상 단기 비자 면제 축소·중단 등이 거론된다.

일본 정부는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70% 안팎을 쥐고 있는 희토류 공급 차질을 잠재적 '최대 리스크'로 보고 있다.

2010·2012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 때 실제로 희토류 대일 수출 중단과 일본발 수입품 통관 강화가 동원됐던 기억도 부담이다.

수산물만 놓고 봐도 수산물 수입이 중단되기 직전인 2022년 일본의 연간 수산물 수출액 중 중국 비중은 20%에 달했다. 수출 시장 다변화를 추진 중이지만 거대 중국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확전을 피하려는 듯 반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2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연기와 관련해 "문화 교류를 포함한 양국 간 인적 교류를 위축시키는 듯한 발언은 정상 간에 확인한 전략적 호혜 관계의 추진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라는 큰 방향성과 양립할 수 없다"면서도 "의장국인 중국이 발표하지 않은 사안이어서 코멘트는 삼가겠다"고 했다.

◆日, 애매한 '하나의 중국'…대만 지위의 회색 지대
[도쿄=AP/뉴시스] 중국 관광객들이 지난 20일 일본 도쿄 아사쿠사 지역의 센소지를 방문하고 있다. 2025.11.21. photo@newsis.com

중국이 거듭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하다.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영토이며 이를 건드리는 발언은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반이자 내정 간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이 어느 나라에 귀속되는지에 대한 중일 양국의 법적·외교적 입장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일치한 적이 없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에서 1945년까지 식민 지배하던 대만에 대한 권리와 권원을 포기했지만 귀속처는 명시하지 않았다. 국공내전 끝에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고 국민당이 대만으로 퇴각해 대립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모호함은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협상에서도 유지됐다.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서명한 중일 공동성명 제3항은 "중국 정부는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임을 재차 표명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며 포츠담 선언 제8항에 기초한 입장을 견지한다"고 규정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중국이 요구한 '대만 귀속 인정' 대신 한 단계 의미가 약한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을 밀어붙였고 중국은 포츠담 선언 언급을 덧붙이는 절충으로 이를 수용했다.

이후 일본은 "대만에 대한 권리·권원을 이미 포기한 이상 귀속 문제에 대해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설명으로 애매한 입장을 관리해 왔다.

후쿠다 마도카 호세이대 교수는 이런 애매함의 배경에 미·일 동맹이 놓여 있다고 짚는다.

1969년 미·일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관여한다는 이른바 '대만 조항'이 포함돼 중국이 무력 통일에 나설 경우 이를 순수한 내정 문제로만 보지 않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일본이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해 온 것은 미·일 동맹과의 모순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중국도 사실상 이를 묵인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위에 이번 '대만 유사 시 존립위기 사태' 발언이 올라탄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언급한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 보수 정치권이 오랫동안 공유해 온 안보 인식과 정확히 맞물린다.

일본은 2015년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만 유사 시 미·일 동맹 틀 안에서 자위대가 미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라는 해석이 보수 진영에 널리 퍼져 있다.

실제 일본은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에서 1969년 이후 52년 만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명시했고, 2022년 12월에는 이른바 '안보 3문서'를 개정해 장거리 타격 수단을 포함한 '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하며 방위비를 GDP 대비 2%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국회 답변이 이런 기존 정부·여당의 안보 노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며 중국 요구대로 발언을 거둘 명분이 없다는 태도다.

결과적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정면 충돌하는 발언이고 일본 보수층에게는 이미 굳어진 안보 상식에 가까운 인식이어서 양측 모두 한 발 물러서기 어려운 구조적 대치가 선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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