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戰 현장리포트①]불안한 휴전, 긴장 속 최전선…"빼앗길 수 없는 땅"

기사등록 2025/11/19 13:00:00 최종수정 2025/11/25 18:07:15

“20년 넘게 15초 안에 뛰는 삶”…최전선 도시의 일상

가자 접경 스데롯 14세 소녀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평화와 공존, 그러나 하마스와는 불가능”…복합적 시선


[이스라엘 스데롯=뉴시스] 최명수 기자 = 지난 11일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1㎞ 남짓 떨어진 최전선도시 스데롯의 한 지하 방공호에서 이스라엘디지털센터 활동가 아디 라비노비츠 베데인(42)씨가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쏜 카삼로켓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미사일 잔해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apollon@newsis.com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 3000여명이 이스라엘 남부 22개 마을을 공격했다. 2년여 지나 지난 10일 1단계 휴전에 이르렀지만, 현장 상황은 아직도 어수선하다. 공감언론 뉴시스는 지난 9~13일 가자지구 최전선 도시 스데롯과 남부, 텔아비브, 예루살렘, 하이파 등을 취재했다. 가자전쟁 휴전 현장을 5회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편집자 주]

[이스라엘 텔아비브,스데롯,키부츠니르오즈=뉴시스] 최명수 기자 = “쩨바 아돔(Tzeva Adom·히브리어로 적색 경보), 쩨바 아돔, 쩨바 아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로켓을 발사하면 휴대폰과 확성기를 통해 동시에 경보가 울린다. 가자지구 접경지역에서는 경보 발령 15초 안에 방공호로 뛰어야 한다. 지난달 1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1단계 휴전으로 공격 횟수는 줄었지만, 포성과 경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가자지구 철책선에서 불과 1.1㎞ 떨어진 인구 3만5000명의 최전선 도시 스데롯. 이곳 시민들에게 '쩨바 아돔'은 일상 생활이 됐다. 2002년 가자에 8m 높이 장벽이 세워질 때 즈음부터 20여 년 동안 이어진 일이다.

◆20년 넘은 최전선 도시의 긴장

스데롯 중심지 지하 방공호에서 만난 이스라엘디지털센터 활동가 아디 라비노비츠 베데인(42)씨는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을 “도시 전체가 총성과 폭발음에 잠긴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순식간에 스데롯은 ‘유령도시’가 됐다. 지금도 총탄 자국과 불탄 건물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하마스는 유대교 축제 ‘초막절’ 새벽, 수십 개 지점을 동시 공격했다. 시내 상점과 가옥이 대부분 불탔고, 경찰서 건물까지 하마스 대원들에게 점령됐다. 남북으로 이어진 232번 국도 일대도 하마스가 장악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이틀간 교전 끝에 경찰서를 되찾았지만, 내부는 트랩과 폭발물로 가득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서는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구조물이 들어섰다.

◆“우린 떠나지 않는다”…14세 소녀의 삶의 자리

베데인 씨와 함께 있던 인근 베리중학교 학생 아비탈 바크닌(14)양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뿐이었어요. 어른들이 갑자기 뛰라고 해서 같이 도망쳤죠. 예루살렘으로 피신했다가 몇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친구 한 명은 총상으로 후유증을 안게 됐다. 바크닌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로켓 소리는 거의 매일 들려요. 그래도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 여기가 우리 삶입니다. 우리 기억이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곳이에요.”
[이스라엘 스데롯=뉴시스] 최명수 기자 = 지난 11일 이스라엘의 가자 접경 도시 스데롯의 한 지하 방공호에서 인근 베리중학교 학생인 아비탈 바크닌(14)양이 2023년 10월7일 하마스 기습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apollon@newsis.com

◆니르 오즈의 상처와 재건

가자 국경에서 직선 거리 2km 남짓한 키부츠 니르 오즈(Nir Oz) 역시 하마스 약 500명이 침투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다. 농업공동체 220가구 가운데 단 6채만 남았고, 대부분 가옥이 불탔다. 400여명의 주민 가운데 117명이 살해되거나 납치됐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리타 립시츠(61)씨는 시아버지 오데드 립시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팔레스타인 인권을 위해 활동한 평화운동가이자 기자로서, 과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인터뷰한 인물이다. 그러나 10월7일 하마스에 납치돼 500일 넘게 생사가 불확실하다가 시신으로 돌아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실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키부츠에서) 다시 살아낼 겁니다.”

현재 니르 오즈에는 약 10가구가 복귀했다. 불탄 집들은 철거됐고, 일부 방공호는 ‘기억의 박물관’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키부츠 입구에는 새 건물 10채가 지어져 일부 주민은 연말께 돌아와 입주한다. 군 입대 전 ‘갭 이어(gap year)’ 청년 50여 명이 자원해 재건에 참여하며, 키부츠 회복의 새 세대가 되고 있다.

시아버지의 영향일까. 립시츠 씨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강조했다. “평화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하마스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평화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니르오즈=뉴시스] 최명수 기자 = 지난 11일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집단농장) 니르오즈의 한 가옥이 불에 탄 채 방치되어 있다. 이 농장은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기습 공격을 받아 초토화됐다.  2025.11.11. apollon@newsis.com


◆노바 페스티벌의 참극

가장 큰 참극이 벌어진 ‘노바(Nova)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극적으로 살아난 사회·교육 분야 종사자 마잘 타자조(35)씨를 만났다. 그는 하마스 습격 그날 친구 두 명을 잃었다. “새벽 6시29분, 해가 막 떠오르는 순간 로켓 공격이 시작됐어요. 3500여명 축제 참가자가 모두 공포에 빠졌습니다. 주차장 출구는 피난 차량으로 막혀 움직일 수 없었고, 총성과 폭발이 이어졌죠.”

그는 움푹 패인 땅에 엎드려 ‘죽은 사람’처럼 숨었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하마스 총격에 목을 다쳤다. 오후 2시30분, 부상자들과 함께 가까스로 병원으로 옮겨질 때까지 8시간 넘게 생존을 버텼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세계가, 그리고 모든 사람의 얼굴이 전혀 다르게 보였어요.”
[이스라엘 레임=뉴시스] 최명수 기자 = 2023년 10월7일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기습 공격을 단행한 이스라엘 레임지역 노바페스티벌 현장에 세워진 추모 시설. 이스라엘방위군(IDF) 소속 여군이 희생자 사진을 보고 있다.  2025.11.11. apollon@newsis.com

◆인질 생존자의 증언

텔아비브 인질 광장 근처 도서관에서 만난 루이스 하르(72) 씨도 지난해 2월 이스라엘방위군 구출작전으로 풀려난 뒤 가자에서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테러리스트가 바로 앞에서 총을 들이댔어요.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죠.” 그는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새 삶에 대한 희망도 이야기했다. “누가 제 나이를 물으면 ‘한 살 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이지요”
[이스라엘 텔아비브=뉴시스] 최명수 기자 =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질광장에 설치된 천막 안에서 하마스에 끌려갔다가 구출된 루이스 하르(72)씨가 지난 9일 자신이 억류된 동안 희망을 잃지 않았다며 희망(Hope)을 상징하는 목걸이를 보여주고 있다.  2025.11.09 apollon@newsis.com

◆휴전 속 불안한 평온
휴전 이후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 주요 도시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인다. 해변엔 해수욕을 즐기는 시민이 있고, 로스차일드가는 새벽까지 젊은이들로 붐빈다. 전쟁의 상흔은 잠시 잊힌다.

그러나 국경은 다르다. 지난 11일 노바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땅굴을 파괴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13일에는 하마스 로켓이 발사됐다는 경보도 이어졌다. 인질 송환 합의에도 이스라엘 인질 4명의 시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스라엘 파괴" vs "하마스 소탕"
2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으로 가자지구 사망자는 6만9000명 이상, 이스라엘도 1500명 넘는 희생을 냈다. 국제사회에서는 ‘제노사이드’ 비판이 커졌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하마스 땅굴 제거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1987년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규모 민중 봉기) 속에서 탄생한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괴’를 목표로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들의 기습은 접경 지역 주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반대로 이스라엘군의 보복 소탕전은 가자지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수십차례 대피령을 내렸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었다.

양측 모두 “이 땅을 빼앗길 수 없다”고 말한다. 1993년 오슬로협정이 열어 놓았던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스데롯 방공호에서 만난 14세 소녀 바크닌이 한 말은 이 같은 현실을 압축한다.  “두려워도 떠나지 않아요. 여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apoll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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