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춘천·원주 ‘멈춘 공사판’…3년간 미착공 사업 172건
규제 강화의 역풍…“서울 중심 처방이 지방엔 족쇄”
수주액 90% 급감·착공 반토막…‘구조 붕괴’ 신호음
[강원=뉴시스]김태겸 기자 = 건축 허가 안내판이 붙은 펜스 안이 조용한 지 오래다. 강원 경제의 허리로 불리던 강릉·춘천·원주, 이른바 ‘강·춘·원’은 지금 멈춘 공사판으로 채워지고 있다.
17일 강원도 건축 허가 및 착공 통계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이들 지역에서 인허가만 받고 착공에 이르지 못한 사업장이 172건에 달한다. 도심 곳곳에 방치된 아파트 부지와 미착공 호텔 단지는 건설사들의 재무 부담을 키우고, 지역 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주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지만, 강원도 내 분위기는 오히려 냉각됐다. 서울과 세종 등 수도권 중심의 규제 강화 대책이 주로 담기면서, 이미 침체 국면에 빠진 강원 지역에는 ‘규제의 역풍’만 불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춘천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기준으로 만든 정책이 지방엔 족쇄가 되고 있다”며 “착공은커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조달조차 막힌 현장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원 지역 부동산중개업계도 한목소리로 “규제만 강화되고 지방 거래는 더 얼어붙었다”고 말한다. 강릉에서는 숙박시설 개발이, 원주에서는 주거단지 착공이, 춘천에서는 신규 분양 사업이 모두 멈춰 섰다. 실수요자들조차 “규제 전에 사야 한다”는 불안감만 커졌을 뿐, 실제 거래는 거의 없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수치로도 침체는 명확히 드러난다. 2025년 1분기 강원도의 건축 허가 면적은 전년 대비 43% 감소했고, 착공 면적은 50% 줄었다. 원주는 허가 면적이 -8.5%, 착공 면적은 -28.7%로 전국 평균보다 낙폭이 컸다.
강원도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HBSI)는 55.5로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였으며, 같은 해 7월 건설업체 수주액은 649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90.9% 급감했다. 한국은행 강원본부도 2025년 1~4월 공공 건설 수주액이 전년 대비 26.6% 감소했다고 밝혔다.
건설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강원은 인구 기반이 약하고 부동산 수요가 줄면서 분양 불안과 PF 리스크가 중첩돼 있다”며 “허가만 많고 착공 실적이 없는 현상은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라 구조 붕괴의 징후”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강원 전역에서 PF 부실 우려가 확산되고, 대형 시공사들이 사업을 미루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불황 속에 증여 건수만 늘고 있다. 강원지역의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올해 1~9월 기준 전년보다 44.4% 증가해 1,571건에 달했다.
특히 원주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하는 사례가 급증했는데, 전문가들은 보유세 부담 회피나 양도세 회피 목적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수요자들은 대출 규제 강화로 집값이 내려도 살 수 없는 ‘역설’에 빠졌다. 한 춘천 거주 직장인은 “서울 잡겠다고 규제 강화하면 지방은 같이 죽는다”며 “지금은 전세대출도 막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도 한계에 부딪혔다. 강원도 도시개발국 관계자는 “허가만 내주고 방치된 사업들이 도시 신뢰와 미관을 해치고 있다”며 “사업 착수 조건을 강화하고 위험 지역에는 도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도 “수주액이 90% 가까이 줄고 주택사업 전망이 전국 최하위라는 점은 강원 건설경기가 구조적 위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며 “공공 발주 확대와 금융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회복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세 번째 부동산 대책 ‘10·15 대책’ 이후 강원도는 ‘정책의 그늘’ 아래 놓인 대표적인 지방경제가 됐다. 규제 강화라는 수도권 중심 해법이 강원 현장에서는 자금 경색과 착공 중단, 실수요 위축이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강릉시민 김모(48)씨는 “서울 집값 잡겠다고 지방까지 묶는 건 불합리하다”며 “집이 안 팔려도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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