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으로 묶인 국고 지원…이 상태로 올려도 되나[등록금 오르나③]

기사등록 2025/01/10 05:30:00 최종수정 2025/01/10 06:00:24

등록금 5% 오르면 국고 학자금 부담은 어떻게

국가장학금 전액 지원자만 고려하면 914억원↑

학자금 대출 지원과 국가장학금 증액 요구 가능

"학자금 5조→대학 자율 재정으로 바꾸자" 지적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 '등록금 인상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 지난 2012년 국가장학금 규제 도입 후 동결이 유지돼 왔던 대학 등록금이 14년 만에 인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는 학부 등록금을 올해 법정 상한선 최대치인 전년 대비 5.49% 인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2025.01.08. scchoo@newsis.com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대학 등록금 인상이 시작되면 그간 '밑 빠진 독'이라 불렸던 대학에 대한 국고 지원 방식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저금리 기조 유지에 올해 나랏돈 약 5조원이 들어간다. 학자금으로 쓸 수밖에 없어 대학은 교육 질이 낙후돼 간다고 아우성인데 가계의 부담을 확실히 덜어주고 있는지도 미지수라는 평가다.

10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이 2012년부터 동결돼 오면서 이제는 올리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 액수는 여전히 가정에서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23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57만3700원이었다. 그 해 1분기 통계청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액을 연간 금액으로 환산하면 4789만원이다. 등록금을 개인이 다 내면 연소득 15.8%를 써야 하는 상황이다.

소득 최저 1분위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112.5%였고 ▲2분위 46.7% ▲3분위 30.4% ▲4분위 23.4% ▲5분위 19.3% 등이다.

'처분가능소득'은 세금이나 사회보장분담금 등 비소비 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소득을 말한다. 간접적인 구매력 지표다. 기숙사비나 주거비, 사교육비 등을 포함하면 자녀 대학 교육비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은 더 치솟을 수 있다.

교육부는 올해 대학 등록금이 법정 상한(전년 대비 5.64%)까지 오르면 국가장학금 예산으로만 국고 914억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국가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는 기초·차상위계층 및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다자녀 가구의 셋째 이상 학생들만 고려한 액수다.

등록금이 오른다고 해서 당장 국가장학금이 늘어나는 건 아니므로 다른 학생들의 학자금 부담도 커지게 되는 만큼 추가적인 예산 증액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간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은 전체 재학생 대비 절반도 채 못 됐다. '반값등록금' 수준의 혜택을 받으려면 소득과 재산 수준이 더 낮아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재산 수준이 낮아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대학생은 지난해 재학생 대비 전체 47.6% 규모였다.

[서울=뉴시스] 11일 교육부가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한국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지난 2021년 기준 1만5858 PPP달러(1312만원)로 전년 대비 12% 상승했다.  'GDP 대비 정부 재원 공교육비 비율’은 고등교육(대학) 부문이 0.7%로 OECD 평균(1.0%)보다 0.3%p 낮았다. 대학 등록금의 경우 한국은 지난 2022년 기준 국공립대(5171 PPP달러)는 자료 제출 24개국 중 6번째, 사립대(9279 PPP달러)는 13개국 중 5번째로 높았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예정처가 국가장학금 지원 구간을 통계청 소득 10분위와 비교해보니 2023년 기준 소득 5~6분위보다 높을 시 한국장학재단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립대 학생이 국가장학금으로 '반값등록금'을 누리려면 재단의 학자금 지원 6구간(420만원 지원)까지는 소득과 재산 수준이 낮아져야 한다. 소득 4~5분위 수준이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학자금 지원 9구간도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예정처 추정 방식을 따르면 소득 8분위(재학생 72.6%)까지는 혜택을 볼 전망이다.

다만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보다 국가장학금 예산을 3878억원(9.5%) 증액한 4조4852억원을 투입한다.

학자금 대출에도 매년 국가보증 채권을 찍고 있으며 이자 경감에는 수천억원대의 국고가 쓰인다.

학자금 대출 금리는 2021년부터 1.7%로 동결돼 있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대학 재학기간 및 취업 전(일정 기준소득 발생 전)에는 원리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ICL) 제도도 있다.

교육부는 매년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대출이자를 면제하는 비용을 국고를 편성해 충당하고 있으며 새로 일으키는 대출은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이 재단채를 발행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가장학금 도입 전인 2011년 신규 재단채 발행 규모는 2조3400억원이었다. 지난해에는 1조5100억원이 발행됐고 올해는 잠정 2조4500억원으로 추정됐다.

올해 학자금 대출 이자 대납과 면제, 특별상환유예, 손실보전금에만 총 3098억원이 편성됐다.

이는 2023년(결산) 2422억원, 지난해(본예산) 2740억원 등 매년 늘어나고 있다.

등록금 동결 기조가 정착되기 전인 2011년에는 전체 대학 재학생 대비 14.3%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세종=뉴시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의 최근 2023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 대학 일반재정지원 증액은 2022년 대학등록금 수입 총액과 견줘 6.59% 인상분을 보전(상쇄)한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자료=국회예산정책처 2023회계연도 결산 교육위원회 분석 보고서 갈무리). 2024.07.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오랜 동결 속에 대출을 받는 비율은 2021년에는 12.7%까지 하락했으나 2022년 12.9%, 2023년 13.8% 등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등록금이 오르면 다시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등록금 인상의 여파로 국고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전문가들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들이 얼마나 등록금을 올릴지를 먼저 봐야 하고 학생 수가 줄고 있다"며 "국가장학금 예산이 계속 확대돼 왔음에도 학생 수가 줄고 있어 국가 재정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교육계에서는 국가가 매년 이런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학자금 목적으로 묶지 말고 대학에 직접 투자해 자율적으로 쓰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대신 고지서상 등록금을 대폭 낮추자는 것이다.

대학들은 학자금 지원보다 일반재정지원을 더 선호한다. 학자금 용도의 국고는 말 그대로 장학금에만 쓸 수 있다. 일반재정지원은 장학금에도 쓸 수 있고 대학의 자체 발전계획에 따라 교육 혁신에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23년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고특회계)를 신설하고, 유·초·중·고에 쓰이던 교육세 세입 일부를 가져와 대학 일반재정지원 예산을 전년 대비 30% 이상 증액한 바 있다. 대학별로 평균 46억여원을 늘려줬다.

예정처는 이를 2022년 대학들의 등록금 수입 결산과 비교하면 일반재정지원으로 거둔 추가 수입이 등록금을 6.59% 올려 준 효과와 같다고 했다.

올해 일반재정지원(대학혁신지원·국립대 육성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3564억원(22.6%) 감액된 1조2204억원이 편성됐다. 경기 둔화로 인한 세입 감소 탓으로 보인다.

최근 국립대 총장들도 교육부 차관을 만나 고특회계가 올해 말 만료되는 점을 고려해 재정 확충을 요구한 바 있다.

임 연구원은 "올해부터 국가장학금은 예전처럼 성적 맞춘 소수에게만 주지 않고 사실상 학생 수 대비 70%까지 지급하는 방식이 됐다"며 "굳이 이런 구조가 아니라 장학금 재원을 일반재정지원으로 지급해 고지서상 등록금 자체를 낮추고 저소득층은 대학이 자제 장학금을 지원해 지금처럼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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