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저성장·탄핵 사태에 美 FOMC 충격
1450원대 환율은 15년전 금융위기 이후 처음
내년 상반기 강달러 심화에 한은 금리 인하 가능성
1500원 가능성 열어둬야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원·달러가 15년 만에 1450원대에 올라섰다. 국내에선 내년 1%대 저성장 우려에 따른 경제 펀더멘탈 악화에 탄핵 사태라는 정치 불안으로 원화 가치가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시사는 그대로 환율을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밀어올리는 트리거가 됐다.
문제는 내년 1분기까지 고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1월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과 행정부 출범으로 달러에 힘이 더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불안 지속에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는 등 상황이 겹칠 경우 1500원대 환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美 FOMC 쇼크에…환율 1450원 뚫었다
2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는 1451.4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지난 19일 전일대비 16.4원 오른 1451.9원을 오른 후 이틀째 1450원대를 기록했다. 시가 기준으로 환율 1450원 돌파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3월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최근 환율 급등 배경에는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가능성에 따른 달러 강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열린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연준은 25bp 금리를 낮췄지만, 공개된 점도표에는 내년 금리 인하 횟수가 종전 4회에서 2회로 축소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이는 그대로 달러가치를 수직 상승시켰다. 주요국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지수는 107선에서 그대로 108선으로 수직 상승한 후 20일에는 108선 중반으로 올라섰다.
◆원화값 짓누르는 '코리아디스카운트'
12월 FOMC 충격 전부터 원화값은 이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인 범용 반도체 시장 침체와 미국의 보호 무역 강화에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된데 다 비상 계엄과 탄핵 사태에 따른 정국 불안 악재까지 찬물을 끼얹으면서다.
이달초 1400원이던 환율은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순신간에 1430원대로 뛴 상태였다. 그 사이 달러지수는 106선에서 큰 폭의 등락이 없었다는 점에서 정치 불안이 원·달러를 30원 가량 밀어올린 셈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회 기재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보다 한 30원 이상 올라간 상태"라며 "더 이상 정치적인 프로세스에 충격이 없고, 경제 정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환율이)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 같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내년 1분기…트럼프발 강달러 압력
문제는 달러 강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인 내년 1월에는 달러값이 더 뛸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 등장해 미국 우선주의와 경기 호조, 보호무역, 이민자 정책 등 달러 강세를 유발할 정책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유럽 등 주요국들의 추가 금리 인하도 달러 강세에 기름을 부을 만한 요소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초 달러지수가 110선대로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상승세가 탄력받으며 달러지수가 일시적으로 110선을 터치할 수도 있다"고 봤다.
달러지수가 110선으로 뛸 경우 단순 계산으로도 원·달러는 1480원대에 오르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지표나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변수가 추가될 경우 1500원대 터치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원화값 더 떨어지나…한은의 1~2월 추가 인하 가능성
환율 추가 상승의 또 변수는 한은의 금리 정책이 꼽힌다. 정부의 추가 재정없이 경기 부양 책임이 한은에 내몰릴 경우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 이는 1.75%인 한미 금리 역전차 확대로 이어지며 그대로 원·달러를 더 밀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 사태에 따른 소비 위축과 추경 등 재정 집행 공백에 한은이 적극적으로 경제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우리도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3회 연속 인하가 경기 부진 시그널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려해 내년 1월보다 2월 인하 전망에 무게를 둔다"면서 "추경 발표 전 금리를 미리 움직이기 어려운데 다, 환율과 트럼프 리스크도 있는 만큼 1월에는 완화적 제스처를 보이는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내년 상반기 내 1500대 갈수도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 환율 1500원대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달러 강세가 내년 1분기에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정치 리스크가 진정되면서 원·달러 상방을 제약할 수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기대에 우리나라는 성장에 대한 우려에 한은의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겹칠 경우 원·달러가 1500원대로 치솟을 수 있다"면서 "단계적으로 외환보유고로 방어하고, 추가 외환스와프 체결에도 나서야 한다"고 봤다.
김 연구원은 "내년만 보면 2~3분기로 가면서 단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1분기까지는 현 레벨을 중심으로 갈 것"이라면서 "트럼프 발 달러 강세와 미국외 국가들의 통화완화, 국내 여야 대립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1500원 터치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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