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아기 받아주는 병원 없어요"…진료 사각지대

기사등록 2024/08/13 15:06:11 최종수정 2024/08/13 15:09:19

'전문영역'인 만1세 미만 영아 진료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운영 차질

도 "의료 공백 없애도록 고민 중"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의료공백 장기화로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환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2024.07.17. ks@newsis.com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백일도 안 된 아이가 아플 때 받아주는 병원 하나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건가요?"

경기 성남에 사는 박모(33)씨는 최근 생후 94일 된 아이의 열이 38도 가까이 올라 집근처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해당 의원에서는 진료의뢰서를 써주며 응급실에 가볼 것을 권했다.

박씨는 열이 펄펄 끓는 아기를 안고 곧바로 인근 응급실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첫 번째 찾은 병원에서는 최소 5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소아응급실'이 있던 두 번째 병원에서는 "신생아 열 체크를 해줄 의사가 없다"며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진료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로 연결했던 또 다른 병원에서는 일단 내원하라면서도 "아기가 너무 어려서 접수가 될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박씨는 고열로 우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할 수 없어 어디가 아픈지 확인조차 못 한 채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는 "'병원 뺑뺑이'를 돌면서 아기 하나 봐줄 병원이 없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다. 나라에선 저출산이라고 아기 낳으라 난리를 치면서 막상 태어난 아기들은 방치되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의료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필수의료로 꼽히는 소아청소년과 부족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만 1세 미만 영아 진료가 사각지대에 놓였다.

13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응급의료기관은 권역응급의료센터 9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 34개소, 지역응급의료기관 30개소 등 모두 74개소다.

하지만 만 1세 미만 영아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판단이 필요한 전문 영역으로 분류돼 일반 응급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통상 응급의료기관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기 진료가 쉽지 않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는 중증응급소아환자를 받을 수 있는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4곳을 권역별로 지정했지만, 그마저도 의료파업 여파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도내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은 ▲성남 차의과대학교분당차병원 ▲고양 명지의료재단명지병원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의정부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등이다. 24시간 소아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소아응급 진료를 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포함한 전담인력과 전담병상을 갖추도록 인건비 등을 지원한다.

현재 분당차병원만 기존 인력 8명에 1명을 충원해 9명으로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분당차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기능도 하는 곳이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의료파업의 영향으로 어려움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지속돼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00일 이전 아기가 열이 날 경우 선천질환이 발현되거나 세균 감염 등 중한 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제대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경험이 있는 소아과 의사가 아니면 판단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또 "소아응급환자는 말 그대로 '소아'와 '응급' 분야가 겹쳐 어려움이 크다. 사실상 현재 소아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는 데가 없다. 소아과 전공의가 늘 부족해서 의료대란 전에도 그랬고, 의료대란으로 최근 악화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성인이나 일반 소아와 달리 열이 나면 당장 입원을 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다. 그런데 소아과 의사가 없으니까 전문 영역인 신생아를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위급한 치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응급치료'뿐 아니라 '최종치료'의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최종치료'를 제공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현 시스템에서는 응급실에서 진료가 안 되는게 당연하다. 급한 상황에서도 진료 본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보니 최종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점점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에서 최종 치료가 아니라 응급치료만 할 수 있도록 법적 부담을 덜어주는 등 인식 전환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소아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응급의학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응급실에서도 소아 진료를 봐야 하지만, 의료분야가 점점 고도화·전문화되면서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아이들은 금방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몇시간씩 기다려야하거나 진료를 받기 어렵다고 하면 부모 입장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공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의정갈등으로 문제가 더 심해진 것은 맞지만, 의료파업이 아니라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늘 부족했다. 1년 미만의 아기가 아플 때 중증 응급이 아닌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건 사실 파업이 아니라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지자체에서도 고민하는 부분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이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amb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