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옷 벗고 자도 더워…이골 난 더위에 자주 선잠"
"동행목욕탕도 한 달에 4번밖에…샤워시설 부족"
전문가 "동행목욕탕은 '미봉책'…주거 개선 필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은 환기도, 통풍도 잘되지 않는다. 화장실도 없는 탓에 주민들은 무더위를 씻어내지 못한다.
31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쪽방촌 주민들은 '한증막'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체감온도 32도인 오전 9시40분께 만난 김모(79)씨는 서울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와중에 이 정도면 "시원한 편"이라고 했다.
무더위를 씻을 수 있는 '샤워시설'도 마땅치 않다. 김수일(67)씨는 "화장실에서는 칸막이가 없어 밖에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거나 그마저도 비가 새서 곰팡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바깥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70대 김모씨도 "집에서 거의 안 씻고 이동목욕차에서 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민들 말대로 서울시는 지난해 3월부터 동행목욕탕을 6곳 지정해 폭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했다. 앞서 2012년부터는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쪽방촌 공중화장실 옆에 '찾아가는 이동목욕차'를 도입하기도 했다.
실제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오전 10시10분께 '찾아가는 이동목욕차'에는 50m 넘는 줄이 목욕차 앞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다만 수압이 약하고 창문이 불투명한 탓에 오랜 시간 동안 씻을 수 없었다.
동행목욕탕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는 건 마찬가지. 김형옥(54) 소장은 "에어컨이 가동되긴 하나 여성 쪽방촌 주민들이 여기에서 자는 게 불편해서 더워도 집에서 자겠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목욕탕 관계자는 쪽방촌 주민에게 잘 홍보되지 않는 사실도 지적했다. 동행목욕탕에서 카운터를 보는 서현정(64)씨는 "목욕과 관련한 홍보가 잘 안돼서 안 오는 것 같다"며 "평균적으로 주간에는 18명 정도 온다"고 했다. 또 "폭염기에 한 사람당 한 달에 4번밖에 쓸 수 없다"고 했다.
이 까닭에 쪽방촌 주민들은 더위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8년째 쪽방촌에 사는 김수일(67)씨는 "간밤에 윗옷을 벗고 자도 너무 더워서 선잠을 자주 잔다"며 "여기 사람들은 (폭염에) 이골이 나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자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티켓이 4번뿐인 게 아쉽다"고 했다.
50년쨰 쪽방촌에 사는 김성식(70)씨는 "결국 철거를 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도 폭염 취약계층을 위한 동행목욕탕 지원은 '미봉책'에 가깝다며 근본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동행목욕탕을 지원하는 건 사실상 현재 샤워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며 "제습기나 에어컨 등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영등포 쪽방촌 지역은 산이 아니어서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좁고 환기도 잘되지 않아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공공부조 같은 생계 문제와 주거 문제를 해결 못 하면 쿠폰 몇 장 더 준다고 해서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주거환경개선이 당연히 필요하다"면서 "무허가 건물이 많고 집주인이 재산권 행사하는 경우가 있어 당장 새로 짓는 것은 어려움이 크다"고 진단했다. 폭염에 노출된 쪽방촌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정 교수는 "도시취약지구 개선사업 등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시는 폭염기를 맞아 쪽방촌 주민을 대상으로 ▲쪽방촌 무더위쉼터 ▲동행목욕탕 등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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