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도 본질은 '강압적 통제'…가정폭력법에 넣어 공권력 개입해야"

기사등록 2024/07/10 15:36:09 최종수정 2024/07/10 16:48:53

여성폭력 전문가 국회서 모여 입법 개선 토론회 개최

"교제폭력 규제 법률 없어…반의사불벌로 처벌 미비"

"교제폭력, 가정폭력과 본질 같아…법개정해 포함돼야"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강남역 인근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의대생 최모씨가 지난 5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4.05.14. ks@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여성폭력 관련 전문가들이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는 근거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제폭력'을 따로 정의하는 법규정이 없고 별도의 처벌 및 보호 근거법이 부재해 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거절살인, 친밀한 관계 속 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박선옥 여성가족부 가정폭력스토킹방지과장,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스토킹정책계장, 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부연구위원, 민고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참여했다.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은 '거절 살인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강압적 통제 행위 범죄화 입법과제'라는 발제를 맡아 토론회를 진행했다.

허 연구관은 "교제폭력 범죄의 경우 공권력 개입에 한계가 있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 처벌법) 등에 포함하는 등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별도의 교제폭력 규제 법률 없이 반의사불벌 조항에 따라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건수는 2017년 3만6267건에서 지난해 7만7150건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검거인원은 1만3939건에 그쳤다.

허 연구관은 이를 두고 "처벌불원이 원인일 수 있다"며 "피해자를 취약하게 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가 결정짓도록 하는 것이 사건 접수에서부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어 "사건의 접수, 수사, 가해자 처벌이 피해자 의사에 달려 있어 가해자가 피해자를 회유·협박해 범죄행위를 무마시키려하거나 고소를 철회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허 연구관은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질은 '강압적 통제'라며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의 유사성을 짚었다.

'강압적 통제'는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 비난, 행동의 자유 빼앗기, 가족 및 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기 등의 가해 행위를 뜻한다.

여가부의 '2022년 가정폭력 피해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가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허 연구관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이해한다면 폭력 피해자 중 소수만 보호할 수 있을 뿐"이라며 "현행법 하에서 교제폭력 피해자가 결국 구호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것은 폭력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허 연구관은 "적절한 공권력의 개입을 받을 수 있어야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을 막을 수 있다"며 통제행위를 범죄화하는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소병훈(위 왼쪽 세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거절살인, 친밀한 관계 속 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7.10. xconfind@newsis.com
또 허 연구관은 해외에서도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을 하나의 법률로 규율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안으로 가정폭력 처벌법 개정을 촉구했다.

현재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호주 등은 '친밀한 관계 속 폭력' 등 교제폭력을 가정폭력법에 포섭해 연인의 강압적 통제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후 토론에서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최 사무처장은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은 특정 관계나 특정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이에 속하지 않는 여성폭력의 경우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사각지대가 생기게 된다"고 했다.

이어 "교제폭력과 가정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새로운 '교제폭력법'을 만드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개정해 교제폭력을 포괄하는 식으로 입법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사무처장은 현 가정폭력처벌법이 ▲전통적인 혼인, 혈연 등의 관계만을 규정한 '가족구성원' 규정 ▲보호처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등 가해자 처벌을 무력화하는 규정 ▲가해자 처벌의 책임과 피해자 보호를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는 규정 등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 사무처장은 '데이트관계'에 대한 정의 역시 교제를 전제로 하는 만남까지 고려하는 식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통적인 혈연, 혼인 관계를 넘어 성별정체성, 성적지향과 관계 없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찰의 초동 수사 강화, 의무체포주의 등 피해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명문화해 피해자의 인권보장과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옥 여가부 가정폭력스토킹방지과장도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상 가정구성원은 법률혼과 사실혼관계 만을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교제관계와 같이 친밀관계까지 포괄하는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제폭력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고 국회를 통한 공론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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