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로 맞서는 21세기 돈키호테' 프릿츠 본슈틱 韓 첫 개인전

기사등록 2024/06/01 09:00:00 최종수정 2024/06/01 09:52:36

독일 작가, 용도폐기된 것들로 현대사회 풍자

6월29일까지 삼청동 초이앤초이갤러리

Outskirts 2020-2023 Oil on canvas 200 x 150 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풍경화, 너무 낭만적으로 쳐다보지 말라"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화면은 쓰레기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그림은 섬세하고 적나라하다. 버려진 가구, 램프, 책, 오래된 타이어와 드럼통, 용기, 기계, 옷, 그리고 독성의 폐기물을 땅이나 개울로 흘러 보내는 수도관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덤불과 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쓰레기 더미에 홀로 남겨진 부엉이, 개구리, 너구리, 곤충들이, 그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한국 첫 개인전에 선보인 독일 베를린 젊은 작가 프릿츠 본슈틱(Fritz Bornstück)의 작품이다.

독일과 한국의 현대미술을 잇는 서울 삼청동 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에서 펼친 본슈틱의 ‘Pink’s Not Red’(분홍색은 빨강색이 아니다)전은 '자연계가 인간계에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Roter Koffer’ (빨간 가방) *재판매 및 DB 금지



‘Der Linke Kanal’ (Ray of Light Remix, 운하)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작업의 모티브는 단순히 ‘디스토피아’라는 키워드, 혹은 캐리커처 같은 간소화한 메시지로 쉽게 정의할 수 없어요."

인물을 그리지 않고, 자연에 버려지는 인간 소비 문화의 잔재를 그리는 본슈틱에 대해 이번 전시 서문을 쓴 잉게보르크 루테(Inge Borgruth) 미술 평론가는 그를 '풍차에 맞서는 돈키호테같은 작가'로 설명했다.

"하루가 다르게 고통 받고 파괴되는 자연과 공감하는 작가는 붓, 페인트, 도자기 코카콜라 캔, 담배꽁초와 갈대꽃을 들고 맞서 싸우는 거죠. 그의 모든 그림은 문명의 폐기물, 즉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쓰레기를 수집합니다. 도시와 시골, 식물과 동물 사이, 숲과 들판, 정원, 그리고 해안과 물가의 자연을 배경으로 새롭고 기이한 모습으로 재조명되죠. 인간에 의해 퇴색된 자연의 세계, 끊임없이 증식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연계가 인간에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문명에 대한 고찰 같은 본스틱의 작품처럼 베를린 작가들의 작품에는 아직도 미묘한 우울함이 감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럽의 바로크와 낭만주의 회화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 담긴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아련하고 철학적인 사색과는 결이 다르다"고 했다. "어제의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하루아침에 오늘날의 쓸모없는 유물로 여겨지는 21세기 초에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현대사회의 실태를 탐구하는 '완고한 관찰자'"라며 "이러한 고찰이 담긴 작품은 감정이 결여되어 있지 않고, 정교하고 과감한 색감과 형태는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Burger Place (Pink's Not Red), 2024, Oil on canvas, 100 x 80 cm Courtesy of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재판매 및 DB 금지


버려지고 용도 폐기된 것들로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프릿츠 본스틱은 21세기 예술가로서 엄숙함을 멀리한다. 낭만주의와 대중주의를 넘나드는 작품은 독특한 색감과 추상적인 붓질로 유럽 명화같은 깊이감이 있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발라 다시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칠하기를 반복하는 작가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서사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명언을 그림속에 담았다. “나의 풍겅화, 정물화 너무 낭만적으로 쳐다보지 말라!”

본슈틱은 그림은 현실을 깨닫게 하는 각성제다. 통통한 너구리 한 마리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커다란 햄버거를 움켜쥔 모습은 패스트푸드에 중독 된 현대인의 초상화처럼 다가온다. 전시는 6월29일까지.
Courtesy of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재판매 및 DB 금지

◆프릿츠 본슈틱은
1982년 구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이 후 베를린 국립 예술대학교(UdK)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Entropical Paradise’(Galerie Maïa Muller, 파리, 2022), ‘Stand-In’ (SP2, 베를린, 2022), ‘Neon Grau’ (Galerie Mikael Andersen, 코펜하겐, 2022), ‘Heute Morgen Orange’(Feinkunst Krüger, 함부르크, 2022), ‘Pacifica’(Galerie Anja Knoess, 쾰른, 2021)를 포함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DISSONANCE’(Künstlerhaus Bethanien, 베를린, 2022), ‘FLOWER’(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
2022), ‘Duodeetz’(SMAC, 베를린, 2022), ’Give us Wings’(Galerie Maïa Muller, 파리, 2021), ‘SalonHansa’ (쾨닉 갤러리, 베를린, 2018) 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작품은 코펜하겐의 아르켄 미술관을 포함한 유럽의 다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