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보루' 의대교수들 사직·휴진 확산…"더는 못버텨"

기사등록 2024/04/24 13:24:32 최종수정 2024/04/24 14:42:52

"물리적·체력적 한계…더는 못 버텨"

"정부 실질 조정안 없어 최후수단"

"필수의료패키지·의료생태계 우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4.24.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두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의 사직·휴진 움직임이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리적·체력적 한계,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에 대한 실망, 필수의료 패키지 내용과 의료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두 달 넘게 병원 진료 전반의 업무를 도맡고 있어 피로도가 극에 달한 데다 절대적인 인력 부족으로 수술·진료 차질도 빚어지고 있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빅5' 병원의 A 교수는 "남은 인력을 쥐어 짜 중증 환자를 보고 있는데, 지난주만 해도 100시간 정도 일했다"면서 "수술에 필수적인 마취통증의학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마취과가 열어주는 수술방이 부족해 수술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전국 20여개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장기화된 비상 상황에서 현재 주당 70~100시간 이상 근무로 교수들의 정신과 육체가 한계에 도달해 다음 주 하루 휴진을 하기로 했다"면서 "날짜는 대학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에 의정 갈등 조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사직과 휴진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을 각 대학이 50~100%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을 두고 "실질적인 조정안이 아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B 교수는 "각 대학이 의대 증원을 1000~2000명 사이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인데, 의료계가 아닌 의대 증원을 지지했다가 급격한 인원 증가로 교육이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한 일부 대학 총장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 뿐"이라면서 "필수의료패키지도 그대로여서 (정부가)한 발도 물러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경우 전체 40명(위원장 제외 6개 부처 관계자 20명·수요자 단체 5명·분야별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공급자 단체는 10명뿐이여서 의료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의료개혁 특위는 의대 증원·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료사고처리특례법 등 다양한 의료개혁 과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다.

의료계는 의사 수를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추계해 검증하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24일 기자회견을 갖고 "저희가 주체가 돼 의사 수 추계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하겠다"며 "직접 연구 논문을 공모하겠다. 정부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정책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실질적인 필수의료 살리기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도 의대 교수들이 현장을 떠나려는 요인 중 하나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 ▲공정 보상(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는 혼합진료 금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는 의료인력 확충 정책 안에 담겨 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반대해온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 의대교수들이 오는 30일부터 매주 1회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셧다운’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에 즈음하여 환자들에게 드리는글이 붙어 있다. 2024.04.23. bluesoda@newsis.com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주원인인 일은 고되고 힘든데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의료소송 부담은 큰 현재 의료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의료 개선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노태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현재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빈도가 선진국의 최소 50배 이상이지만 북미, 유럽은 의료가 아예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서 "의료사고 특례법은 선진국이라면 아예 필요조차 없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필수의료 기피의 주원인인 고질적인 저수가의 근본적인 원인인 수가 의사결정 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A 사직 전공의는 "성인과 달리 소아진료는 장시간과 많은 인력, 기술을 요하지만 현재의 수가 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수가는 평균 의료원가의 70% 정도 선에서 결정된다. 병원은 원가 이하로 책정되는 수가(급여)로 보는 손해를 비급여 수입으로 메우고 있다. 수가는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회(건정심)에서 결정되는데, 수가를 올리려는 측 8명(의약계 대표)과 내리려는 측 16명(건강보험 가입자 대표·공익 대표 각 8명)이 의결해 결정하다 보니 수가를 인상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가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수가 인상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태가 내달로 넘어가면 의사 인력 양성 시스템이 흔들리고, 병원들이 도미노 도산할 우려가 있어 의료체계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도 의대 교수들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의대생들은 의대 학칙상 수업 일수를 고려했을 때 대량 유급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전공의들은 복귀한다 하더라도 올해 수련 일수를 채울 수 없게 돼 돌아올 이유가 없어진다.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될 수 있어서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내년에 전문의 2800명 가량이 배출되지 못한다. 전문의 배출 시점이 뒤로 밀리면 군의관, 공보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동안 겨우 버텨온 지방 사립대병원부터 도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병원들은 고질적인 저수가(낮은 의료비용) 체계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전문의 대신 전공의의 최저임금 수준(시간당 1만2000원)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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