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40년 만의 금의환향…최고 전성기
2024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선정 화제
올해 생애 첫 상업화랑 국제갤러리·리만머핀과 전속계약
국제갤러리서 대형 개인전…나무조각·회화 조각 51점 전시
전기톱을 든 '할머니 조각가'가 현재 미술 세상을 접수하고 있다. 일명 '전기톱 조각가.' 공포 영화 제목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에서 40년 간 나무를 썰었다. 아흔 살이 된 올해도 여전히 전기톱을 들고 썰고 다닌다.
"나이? 그런 걸 왜 생각해?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 그런 것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구순에 어느 해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맞은 조각가 김윤신은 걸크러쉬 매력을 뽐냈다.
"한국에 오니까 주변에서 그 나이에 일을 하다니, 저렇게 무거운 톱을 들다니, 그래요. 듣고 보니 새삼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나는 나이 상관없이 그냥 작업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열심히 작업하다가 딱 가는 거, 그게 내 소원이에요. 허허.”
◆아르헨티나서 만난 나무가 너무 좋아서…"묶였다"
"내가 이 나라에서 전시하게 해 다오!"
김윤신은 직진했다. 아르헨티나 대사관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 다짜고짜 밀어붙였다. 동양 여성의 당당함에 놀랐지만 미술관 관장도 만만치 않았다. "작품을 보여 줘야지요?"
"두 달 간 시간을 주세요."
한국에서 교수(상명대)로 살다 1984년 아르헨티나 조카 집에 놀러 가면서 일이 벌어졌다. "아름드리 나무가 여기저기 있는데, 너무 부럽더라고요. 단단하니 나무가 너무 좋더라고. 당시 우리나라에 굵은 나무가 없었거든요."
쓰러져 있는 나무를 주워서 길거리에서 나무를 잘랐다. 활톱으로 나무를 써는데 동네 사람들이 전기톱을 쓰라고 추천했다. 그렇게 전기톱과 인연도 시작됐다.
굉음과 썰림의 미학이 이어진 두 달, 2개의 작품을 끝냈을 때 미술관 관장이 와서 보고 감동을 했다.
"내가 30년을 관장 생활을 했지만 껍질을 붙인 채로 속살과 겉 살의 공간의 차이를 두면서 제작한 나무 작품은 처음 봤다. 전시 합시다."
전기톱으로 썰고 망치로 두드리면서 1년 동안 30여 점을 만들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야외에서 펼친 전시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났다.
"여기저기서 전시를 하자고 연락이 오고 신문에도 많이 소개도 되다 보니까…묶였어요."
초청 받은 전시가 3년이나 이어졌다. 선택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예술가가 될 것인가, 교수로 남을 것인가.'
"내가 내린 결정은, 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그때 결정이 된 거다. 그 순간부터 한번도 쉰 적이 없어요. 계속 작업을 하게 되니까."
우편으로 상명여대(조소과)에 사직서를 보낸 후 40년을 아르헨티나인, 예술가로 살았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1969년 귀국해 10여 년간 대학교수로 활동했고, 한국여류조각가회를 설립했던 1세대 조각가의 이민은 한국 미술계의 '인재 유출'이기도 했다.
'단단한 나무'는 김윤신을 강하게 했다. 작품 안에 건축적 구조와 응집된 힘이 표현됐다. "섬세하게 정돈된 수천 년 역사의 동양적 사고와 남미대륙의 강인한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 찾아 삼만리'가 이어졌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멕시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브라질에서 머물며 새로운 나무를 찾았고, 오닉스와 준보석을 만나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신 미술관(Museo Kim Yun Shin)을 개관했다. '나무 조각가'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김윤신의 상설 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예술가는 이거야.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작업하는, 이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이라는 건 작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봐요. 내 작품은 한 번도 누구의 손을 거쳐본 적이 없어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는 거예요."
◆생애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대박…상업화랑 첫 전속계약까지
지난해 남서울시립미술관 전시가 대박이 터졌다. 생애 첫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이었다. '김윤신 발견'이라며 열광적인 호평이 이어졌다. 이 전시를 관람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과 미국의 세계적인 화랑인 리만 머핀 대표가 김윤신에 날개를 달았다. 생애 첫 상업화랑 2곳과 동시에 전속 계약을 맺었다.
"1세대 여성 작가인데도 이제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작가를 만나 향후 활동을 논의했고 직접 전시를 추진했다. 이 뿐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행사인 2024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 4월에 베니스로 진출한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 없었어요. 아르헨티나에 멋진 공동묘지에 한 자리 예약도 해두었는데…”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인 1935년생 '할머니 조각가' 김윤신의 대반란이 시작됐다. 상업화랑과 베니스비엔날레서 러브콜은 '한국에서 더 일해 보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40년 간 삶의 터전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40년 묵은 짐과 1000여 점의 작품은 아직도 '한국 행 배'에 머물러 있다. 오기까지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4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멈추게 됐네요. 이제 지구 전부가 저의 전시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데까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회화 조각'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합(合)과 분(分)이에요. 합은 나하고 재료가 서로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이죠."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김윤신의 조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이다.
나무마다 달라서다. "냄새가 향기로운 것도 있고, 생명적인 느낌을 주는 것, 단단한 것, 조금 연한 것, 껍질이 거칠게 있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 나무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를 며칠 동안 보는 거에요."
그러다 딱 느낌이 왔을 때 톱을 들고 나선다. 전기톱과 정신의 합일의 순간, 거침없이 공간이 만들어진다. 손처럼 터치한 톱의 미감은 투박하면서도 원시적인 생명력을 발한다.
"하나와 하나가 합이 돼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서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남잖아요. 그게 '분分'이라는 거에요. '두 개가 하나가 돼서 각각 또 하나를 만든다'는 그런 내용이죠."
“합(合)과 분(分)은 동양철학의 원천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나는 1975년부터 그런 철학적 개념을 추구해오고 있고, 그래서 나의 작품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처럼 계속적으로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하나가 된다."
나무를 사랑하는 작가가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정서는 '염원'이다. 어린 시절 바라본 어머니의 기도에서 비롯됐다. 사라진 오빠를 위해 물을 떠 놓고 기도하며 돌을 쌓던 어머니의 모습은 심상에 각인됐다. "예술 공부를 하면서 미술이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엄마의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과 혼이 드러나는 것임을 깨달았지요."
이런 기억을 토대로 ‘기원쌓기’가 탄생했고, 다시 나무를 쌓아 올린 형태나 T자 모양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형식적 변주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알가로보(Algarrobo)라는 나무를 좋아해요. 단단하고 묵직하고 생명력 있는 나무죠. 재료 자체가 자연 그대로 살아 있어서 좋아요."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알가로보 나무,라파초 나무, 칼덴 나무, 유창목, 케브라초 나무, 올리브 나무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도’가 된다. 특히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김윤신 조각'의 특징으로 차별화됐다. 토속성과 원시성, 추상성을 넘나드는 무기교의 조각이다.
◆화판에 회화·목조각에 채색..'회화 조각 세계에 알리고 싶어"
"조각과 그림은 사실 떨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4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를 앞두고 국제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목조각 연작과 ‘회화 조각’까지 51점을 4월28일까지 선보인다.
‘회화 조각’은 코로나19 사태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시 60세 이상 노인은 꼼짝 없이 안에만 있어야 했어요."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일상 주변의 나무 조각들을 모아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했다. 목재 파편이나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칠했다. 심심하니까 시작된 작업은 산골 마을에서 혼자 놀았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게했다. 울타리에서 빼낸 수수깡을 잘라 안경과 소도 만들고, 초를 녹여 물감 비슷한 걸 만들어서 그림을 그렸던 그때처럼나뭇조각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다.
"예술이라는 건 어디서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알았지요."
목조각에 시도한 채색은 남미의 토속 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 조각은 '기법만 다를 뿐 결국 조각과 그림은 같은 것'이다.
'회화 조각'은 회화와 조각을 잇고 나누는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보여준다. “그림을 해야 조각을 하고, 조각을 함으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지요. 내게 조각과 회화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김윤신의 회화는 화려하고 쨍쨍하다. 원색의 색감으로 완성된 작품은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의 흔적을 입기도 하는 등 환경과 심경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제 삶의 흔적을 그대로 표현할 뿐 다른 걸 가미하거나 표현하는 게 아니거든요. 주어진 내 환경, 내 생활 모든 것이 전부 다 내 삶이에요. 그러니 내 삶 전체가 표현되는 거죠.”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진동' 등의 제목의 회화 작업은 판화를 전공한 이력에서도 비롯됐다. 나이프로 물감을 긁는 기법으로 원시적 에너지를 표출하거나, 물감을 묻힌 얇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찍어내 구사한 다양한 색상의 선과 자유분방한 면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본질을 찬양한다.
“앞으로 조각을 이어붙인 '회화 조각'이라는 것을 연구하려고 결심을 했어요. 이 작품을 세계 미술사에 남기고 싶어요."
뒤늦게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구순의 ‘라이징 스타’는 다시 젊어지고 있다. 예술은 새로운 걸 창작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거다. 찰나의 순간을 작품에 잡아내고 있는 김윤신은 황금보다 귀한 '지금'에 충실한다.
"예술이 뭐냐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어요. 끝이 없고 완성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매일 아침과 저녁이 반복적으로 오잖아요.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죠. 똑같아요.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냥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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