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전 수요조사 최대 2847명 훌쩍 넘어
서울 44% 신청한 반면 경인 3.7배, 지방 2.2배
"2020년에 증원 동의했으면 지금 상황 됐겠나"
무리하게 경쟁적으로 써낸 곳도 적지 않은 듯
정부 "질과 여건 개선 않으면 정원 회수 검토"
의료계에선 대학에 증원 신청을 하지 말라고 전방위 압박을 펼쳤지만, 적은 수준으로 적어낸 대학은 일부 있었어도 '0명'을 적어낸 대학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애초 대학 입장에서 학생 수 감소와 재정난 속에 확실한 신입생 확보가 보장되는 의대를 포기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일부 총장들은 "의사가 부족하다"며 반대로 의료계를 질타하기도 했다.
5일 정부에 따르면 이날 0시까지 교육부가 접수한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 수요조사 결과, 40개 대학에서 총 3401명까지 증원이 가능하다고 적어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지난해 11월 의대를 보유한 대학 40개교에 신청을 받은 사전 수요조사의 요구치인 2151~2847명을 크게 넘어선 범위다. 다만 정부는 원래 방침대로 2000명만 늘린다는 방침이다.
◆적극 증원 예고 지방·미니 '5배'…서울 44% 소극적
대형 의대가 포진한 서울은 소극적이었고 지방·소규모 의대는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대학별 의대 정원 증원 신청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도권 13개교가 930명(27.3%), 비수도권 27개교가 2471명(72.6%)을 써 냈다고 이날 공표했다.
현재 의대 정원과 증원 신청을 지역별로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서울은 8개 의대의 정원이 826명이다. 서울대 135명 등 평균 103.25명이다. 반면 이번 신청 규모는 365명으로, 현재 정원 대비 44.2%였다.
경기·인천 지역 5개교는 인하대(49명)를 제외하고 모두 40명 '미니 의대'다. 이들 5개교는 565명을 냈다. 209명을 774명으로 3.7배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방의대 27개교는 총 2471명 증원을 신청했다. 2023명을 4494명으로 2.2배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5배 증원을 써낸 충북대(49명→250명), 3.75배를 겨냥한 울산대(40명→150명) 등이 두드러지나, 조선대(125명→170명, 36%)처럼 대학별로 편차가 있다.
◆의료계 압박?…'막차 잡자' 눈치게임에 신청 폭주
일부 대학들은 지난해 11월 현장 실사를 거친 수요조사 범위를 넘어선 숫자까지 경쟁적으로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대학들이 고심했던 것은 적어도 의료계 여론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대학들이 얼마나 적을 지, 또 다음 기회가 있을지 여부다.
한 영남권 대학 총장은 "100만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대가 없는 인근 지역 여건을 고려했다"며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힘들겠지만 이번 한번으로 증원이 끝날 것이라 생각해 제출했다"고 했다.
이 총장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정원을 더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주 미약하듯이 의대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며 "설마 적어내는 대로 다 주겠느냐, 그래서 많이 써내는 게 가장 좋다는 고민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의약분업(1998년) 이후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없었다.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동결됐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지금보다 적은 범위에서 한 차례 증원을 시도했으나 의료계 반발에 결국 무산됐다.
대학들의 이런 움직임은 애초에 예측됐던 바였다.
의대는 '광풍'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서울대 주요 이공계열 학과조차도 지방 의대보다 입학 성적이 낮다. 학생 모집난에 허덕이는 지방대에게 우수 학생 확보에 용이한 의대를 포기하라 요구하는 건 무리였다.
◆'증원 말라' 요구, 애초에 무리…"의료계 탓 크다"
2000명 안팎, 수요조사 범위 내 제출을 전망하던 정부는 기대 이상의 신청이 들어오자 놀란 분위기다. 오히려 대학들이 증원 수요와 함께 적어 낸 교육 여건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대학들이 제출한 계획대로 의학교육 질과 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정원을 회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정부가 증원에 나서지 않는 대학을 압박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수요조사를 보면 결국 정부 입장대로 '가짜뉴스'에 한층 더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복수의 총장들은 대학들이 이해타산만 고려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록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의대 학장들도 증원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대학마다 여건과 상황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부속병원에서 의사가 부족한 사례도 적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가 계속해 자신들의 이익만 고집하고 타협하지 않은 게 자충수라는 질타도 나왔다.
한 대구·경북권 국립대 총장은 "의대생들이 1년 휴학해 유급하면서 내년에 교육할 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괜찮고, 내년에 입학정원을 늘린다는 것은 안된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 대학은 2배 증원을 신청했다.
이 총장은 "상황이 이렇게 온 것은 의료계의 책임이 더 크다"며 "2020년에 증원을 받았으면 상황이 이렇게 왔겠나. 의사가 모자라다는 것은 의료계 사람들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정부는 정원 배분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배분이 있은 이후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와 별개로 증원 반대 움직임을 이어오던 의대생 동맹휴학, 의료계 집단행동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분위기다. 한 국립대 총장은 "의대 개강을 학사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까지 미루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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