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근육질환에 특수제작 휠체어 이용
불리한 신체 조건 이겨내고 연구자의 길 선택
'장애인 자립' 개념 재구조화 역설, 새패러다임 제시
[용인=뉴시스] 박종대 기자 = "나의 장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알파'(+a)다."
강남대학교 부설 '복지공감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이진영(40) 박사는 27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의존성을 갖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최근 중증 지체 및 뇌병변을 겪는 장애인 4명이 자전적으로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를 연구자 시선으로 분석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제목은 '중증장애인의 자기결정에 기반한 의존-자립-상호의존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생애사적 연구'다.
이 박사는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지 않는 캥거루족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다"며 "비장애인도 부모 품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데, 유독 장애인에 대해 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무능력으로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문제 의식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논문 동기를 밝혔다.
◆비장애인 시각에서 개념화된 '장애인 자립'
이번 논문에서 그는 중증장애인 생애를 고찰해보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 자립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장애인 자립'을 표현할 때 '비장애인과 가까운 삶'에 빗대어 개념을 설명했다. 신체나 정신장애를 겪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장애인 자립'이었다.
반면 그가 제안한 자립은 자기결정에 기반한 상호의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나 정책·제도적 지원을 받는 것을 자립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누구나 스스로 결정한 자립 방향과 의존 정도까지 존중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한 상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립의 정의를 재구조화해야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따로 분리한 개념의 인권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로서 보편의 가치를 지닌 인권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기존 장애인 자립을 향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장애인 시선에서 밀착한 논문을 쓰는 게 가능했던 것은 자신도 바로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근육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그가 앓고 있는 장애 병명은 의학용어로 '원위성 근위축증'으로 불린다. 이 탓에 그는 눈·코·귀·입과 양손만 스스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팔과 다리를 비롯한 허리 뼈는 모두 굽혀진 채 굳어버려 스스로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한다.
◆재야발명가를 찾아간 장애자녀 부모의 간절함
이로 인해 야외에서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전동휠체어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굽어진 신체로 인해 이를 보조해줄 수 있는 특수 제작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그의 부모는 딸의 중학교 재학 시절, 모 언론에 소개됐던 재야발명가 오장근 씨를 직접 찾아가 휠체어 제작을 어렵게 부탁한 끝에 수락을 받았다.
오 씨는 기마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이 박사의 신체 조건을 반영해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맞춤형 휠체어'를 만들어 선사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캠퍼스 생활에 맞도록 전동휠체어를 다시 제작해줬다.
이를 통해 남의 도움 없이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 휠체어를 이용해 혼자 외국에 나가 어학연수 경험도 쌓았다. 오 씨가 만들어준 집게 같은 생활 보조기구들을 써서 홀로 자취도 해봤다.
그는 평소 일주일에 2~3번씩 나가는 연구소 업무를 비롯해 장애인식개선 강사로도 활동 중인 자신에게 섭외가 들어오면 외부 강연도 나간다. 일 년에 많게는 30~40회 가량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기업 등으로 출강을 나간다.
다만 집에서는 신체 특성상 오래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연구와 관련된 글을 쓰거나 다른 일을 보려면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누운 자세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 박사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의 등에 업혀 다녔고, 불편한 몸으로 인해 의자에 앉지 못하기 때문에 온종일 의자 모서리에 엉덩이만 기대거나 책상에 의지한 채 서서 공부했다.
◆생명의 고비 넘긴 끝에 따낸 값진 박사학위
그는 이같은 장애로 인해 박사학위를 따는 데까지 숱한 역경에 부딪혔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전인 2012년 갑자기 숨이 차고 어지러움을 겪는 등 사경을 헤맬 정도로 심각한 빈혈이 찾아와 수년간 매주 수혈을 2팩씩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제대로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박사학위 준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사과정 때인 2017년, 위를 옮기는 대수술도 받았다. 당시 그는 척추가 '제트'(Z)자로 굽어져 있어 위와 심장, 폐가 뒤엉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 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자 다시 박사학위 논문에 도전했다.
그는 박사논문에 실린 '감사의 글'을 톻해 그동안 자신에게 응원과 격려를 비롯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사람들을 언급했다. 그 명단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사람은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다.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그를 지도해준 은사다.
특히 그가 투병으로 박사학위를 접으려고 결심했을 때도 무한한 지지를 통해 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이 교수는 비장애인이 해왔던 기성을 답습하는 연구가 아닌 장애 당사자만 저술할 수 있는 인간 이진영의 삶이 녹여진 연구를 제안했다. 강남대는 지난 19일 교내 캠퍼스 대강당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해당 논문을 저술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우수논문상을 수여했다.
이 박사는 "부족함이 많았던 논문의 초안을 빨간펜 선생님처럼 지도해주신 덕분에 논문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며 "생명의 위협을 받을 만큼 건강을 잃었던 시기에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해주고 제자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상호 의존하는 사회
부모님도 그의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의 부모는 요즘보다 사회적으로 장애와 인권감수성이 떨어졌던 시대에 장애를 가진 딸이 자신의 장애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좌절된 삶을 살지 않도록 '너의 장애는 네 인생의 플러스 알파'라는 가치관과 철학을 심어줬다.
이 박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가 친구로부터 장애를 비하하는 말로 놀림을 겪은 일을 부모에게 일렀다. 그런데 부모는 장애를 겪고 있는 초등생 자녀에게 정서적으로 마음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그 친구를 비난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딸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설명과 함께 장애인을 모욕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마음 속으로 품어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성숙된 조언을 내놨다. 이는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계기는 물론 향후 살아갈 인생에서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태도를 갖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박사는 "수많은 조력자들 덕분에 제 장애가 제 인생에 '플러스 알파'가 됐듯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장애가 인생의 '플러스 알파'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런 조력이 제도가 되고 체계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저도 연구자로서 그들의 조력자 중 하나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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