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대체입법, 미등록 영아 유기 대책 거론된 까닭은 [낙태죄 입법공백①]

기사등록 2023/08/05 06:00:00 최종수정 2023/08/05 06:42:05

야당 "원치 않는 임신, 영아 살해로"…여당 '부정적'

①건강보험 ②시술거부 ③약물 불법 유통 등 혼란



미등록 영아 유기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진보 진영은 원치 않는 임신이 영아 유기나 살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 공백 상태인 낙태죄 대체입법을 대책 중 하나로 꼽는다. 다만 국회는 여전히 '합의 가능'해 보이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관련 논의에 집중하고 있을 뿐 여야간 이견이 큰 낙태죄 대체입법에는 소극적이다. 낙태죄 대체입법이 공전하는 이유와 배경, 그로 인한 현장의 혼란, 향후 전망 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여동준 한은진 기자 = 최근 미등록 영아 유기 사건이 잇따르자 입법부인 국회에서 관련 대책 논의가 본격화했다. 논의 과정 중에는 미등록 영아 유기의 사건의 대책의 하나로 '낙태죄 대체입법'이 거론되기도 했다. 낙태죄는 지난 2021년 1월1일부로 폐기되면서 조건부 합법화된 상황인데, 미등록 영아 유기건의 대책으로 대체입법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일까.

"원치 않는 임신은 위기 출산, 영아 유기, 최악의 경우 영아 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신, 임신중단, 출산과 양육 전반에서 공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낙태죄 대체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 중 한 명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아동 출생 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난 뒤에 한 발언이다. 영아 유기·살해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전제로 한 입법 뿐 아니라 산모의 의사, 건강 등을 이유로 임신중단의 가능성도 염두에 둔 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도 "미등록 영아 사건과 관련해 사실 임신 단계에서 출산과 낙태를 선택할 수 있게끔 해줬다면 유기하는 상황까지 안 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낙태죄 관련 논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며 "미등록 영아 사건 관련 대책으로 낙태죄 대체입법도 같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은주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5.23. bjko@newsis.com

국회에서는 출생통보제뿐 아니라 산모의 익명 출산을 가능케 하는 보호출산제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두 대책 모두 출산을 전제로 한 대책이다. 이에 출산이 아닌 선택을 한 경우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낙태죄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보호출산제만 하게 되면 반쪽도 안 되는 대책이 된다"며 "복지부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출산을 선택한 여성들에게만 상담을 제공하는 쪽으로 좁히고 있는데 출산 여부를 선택하기 전부터 상담 등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미등록 영아 유기 사건 대책의 일환으로 낙태죄 대체입법이 거론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복지위 소속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호출산제, 출생통보제와 함께 낙태죄 관련 입법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어떻게든 아이는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혼모에 지원을 해서 아이들을 유기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은 확고하다"고 전했다.

또다른 국민의힘 복지위원도 "국민의힘은 보호출산제를 빨리 해서 한 생명이라도 잃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낙태죄 관련 표류 상황이 심각하니 묶어서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2019.04.11. photocdj@newsis.com

국회가 낙태 관련 입법 공백을 방치하는 사이 의료 현장에서는 임산부와 의사 사이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낙태 수술이 비범죄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는 모자보건법 14조에 규정된 ▲부모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부모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친인척 간의 임신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의사의 신념에 따른 낙태 시술 거부권 등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의료계에서는 계속해 '의사의 양심적 진료 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관한 법적 근거까지 마련되진 않은 상황이다.

낙태죄 입법공백은 유산유도제 '미프진' 유통 문제로도 이어진다. 미프진은 해외 95개국에서 유통되는 '합법적' 임신중지 약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어서 처방받을 수가 없다.

낙태가 범죄가 아닌 시대가 됐고, 당사자가 원한다 해도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어려워지자 시중에서는 인터넷 등을 통해 미프진을 불법으로 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의사 처방없는 상태에서 산모가 스스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미프진' 수입의약품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가 식약처로부터 자료 보완을 요구 받은 뒤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이에 대해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허가를 위해 1년을 뛰어다녔는데 식약처에서 정리해주지 않았다"며 "낙태죄 관련 입법 공백 상황에서 소극적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 역시 입법 공백에 따른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월30일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 126명이 낙태 관련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중 1위가 법·가이드라인 부재(29.7%)였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 중 1위 역시 '법 개정 및 가이드라인 제시'(56.2%)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yeodj@newsis.com, gol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