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굴종·숭일 외교' 비판 野공세 맞서 '여론전'
"정치적 이익 택할수 있지만 관계개선은 대통령 책무"
관계 변곡점 만든 박정희·DJ 거론하며 개선의지 부각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작심 비판하는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반일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라고 지적한 것은 야당과 시민단체의 '굴욕외교' 비판에 수세 몰린 정국을 여론전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을 보인다.
또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의지를 재차 밝히며 "국민을 믿는다"고 강조한 것은 국민의 협조를 얻기 위한 호소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작심 비판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은 대통령의 책무"라는 점을 부각했다. 문 전 대통령이 반일감정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차별화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지난 16일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굴종' '숭일' 외교라 공세를 펴는 더불어민주당에 반일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라고 역공을 가하며 정국 반전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이날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중계했다. 모두발언 전체 분량도 7514자, 한일관계 관련 발언은 6647자에 달한다. 윤 대통령의 제 104주년 3·1절 기념사의 5배 분량이다.
생방송으로 25분간 진행됐으며 메시지도 평소 국무위원에 지시 당부말이 아닌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로 채워져 사실상 '대국민 담화'에 가깝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모두발언 초안을 수차례 직접 수정했다고 한다.
이날 모두발언은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한 역대 대통령 등 한일 관계의 변천사 ▲한일관계 개선의 당위성 ▲윤석열-기시다 한일정상회담 결과 및 성과 ▲강제징용 3자 변제안 배경 ▲일본의 '호응' 촉구 등으로 구성됐다.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특히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문 전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자신은 그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며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안보와 경제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하여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 도 있었다"며 "하지만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하고,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이는 문 전 대통령을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대통령으로 지적하면서 자신은 이와 대비시켜 반대 여론 속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에 물꼬를 틀겠다는 의지를 부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가 한일정상회담을 굴욕외교라 비판하는 데 대해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도 일본에 타협을 시도했는데 민주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룬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관계의 변곡점을 만든 김대중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여론과 마찬가지로 당시 반대 여론에도 국내 한일 국교 정상화 '결단'을 내린 박정희 대통령과 자신의 결단이 결을 같이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또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춰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한 김대중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계승한 것이란 점도 강조한 셈이다.
윤 대통령 모두발언에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도 등장했다. 자신의 입장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이들의 발언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처칠 수상의 발언을 인용하며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1972년 일본과 발표한 베이징 공동성명에서 중일 양국 인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에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했다"고 했다.
처칠 수상의 발언을 통해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은 한일관계 구상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고, 베이징 공동성명을 환기시켜 '제3자 변제안'을 설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일 양국정부는 각자 한일 관계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각자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성의있게 호응해올 것"이라고 한 발언 역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이날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얻을 '국익'과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에도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도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저는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마저 불투명해져 버린 한일관계 정상화를 방안을 고민해왔다.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며 "그렇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어 "미·중 전략 경쟁, 공급망 위기, 북한 핵 위협 고도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관계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이익으로▲반도체 등 안정적 공급망 구축 ▲2050탄소중립 이행 공동 대응 ▲글로벌 수주시장 공동진출 ▲한국산 제품의 일본 시장 진출 확대 ▲일본인 관광 회복에 따른 내수회복 및 지역경제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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