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개 사체 최소 수백구 발견…"번식업체 비용 절약"

기사등록 2023/03/06 16:37:41 최종수정 2023/03/06 21:49:40

"카펫처럼 사체가"…다른 사체 뜯어 먹은 흔적도

"번식업체가 폐기물 된 개 처리 비용 절약 위해"

동물생산업 규제 있지만…"당국 제대로 관리 안해"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 = 경기도의 한 주택에서 수백구의 개가 굶어 죽은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케어 유튜브 캡처) 2023.03.0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경기도 한 주택에서 수백여마리의 개가 죽은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현장을 직접 확인한 동물권 단체는 이 남성이 번식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상품 가치가 떨어진 노견을 처리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 번식업에 대한 관리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양평경찰서는 지난 4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유기견 등을 집으로 데려온 뒤 밥을 주지 않고 굶겨 죽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동물권 단체는 발견된 사체가 1000마리에 달한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당시 영상을 보면 집 마당과 고무통 안에는 최소 300~400여마리로 추정되는 개 사체가 발견됐다.

케어가 지난 5일 공개한 영상에는 마당과 철창 바닥에 개의 사체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눌어붙어 있었다. 철창 안에는 피와 살점이 드러난 개의 뼈대가 남아 있는 등 굶주렸던 개가 다른 개의 사체를 뜯어먹은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는 "사체의 털만 봐도 이게 어떤 종이라는 게 보였다. 상당수 사체가 반려견으로 많이 들이는 작은 크기의 품종견이었다"며 "철창 안에는 카펫처럼 사체가 깔려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케어는 A씨에게 개의 출처를 집중 추궁한 끝에 A씨의 휴대전화 최근 통화기록에서 '○○애견', '□□애견' 등 번식업자의 전화번호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결국 A씨는 번식장에서 1만원을 받고 개를 데려왔다고 케어 측에 실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A씨는 '개들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1만원을 받았으며 개장에 개들을 넣어 놓은 채 방치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양주=뉴시스] 지난 2021년 6월 18일 오후 남양주유기견보호소의 모습. 2022.06.19. jungxgold@newsis.com *위 기사와 관련 없음.

동물권 단체들은 번식업체들이 폐기물이 된 개들의 처리 비용 절약을 위해 상품성이 떨어진 잉여 개들을 유기하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고있다.

전진경 동물권 행동 카라 대표는 "새끼를 못 낳는 번식용 개들은 (번식업자들이) 개들을 데리고 있어봤자 사료값만 드니까 이렇게 처분하는 것이다"며 "개를 치료할 마음은 없었을 것이고 안락사를 시키려고 해도 그 비용 문제로 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비판했다.

박 활동가도 "번식용 개들은 출산을 계속하다 보니 7~8살이면 번식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업자 입장에서는 이용 가치가 없는 개들을 개들의 수명인 15년, 20년 동안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도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를 하면 마취, 수의사 인건비 등 비용이 청구되고 사채는 1당㎏ 6000~7000원이 들어 사채 처리 비용이 10만원은 훌쩍 넘긴다"며 "비용 절약을 위해 안락사를 하지 않고 이처럼 가정집 마당에 방치해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천안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천안시 유기동물 보호소 현황'에 따르면 유기동물 사체 처리비는 1마리당 6만5000원이 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번식업자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지난 201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동물생산업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규제가 강화됐지만, 실질적인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 활동가는 "허가제라고 하지만 실상은 번식 산업에 대한 어떤 규제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당국이 제대로 된 전수조사 한번 없이 관리 감독을 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 있다" 지적했다.

전 대표 역시 "아무도 감시하고 있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지금은 번식장에서 75마리까지 번식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숫자가 말도 안 된다. 7마리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관리자 수를 대폭 늘리고 그 숫자를 점차 줄여 나가 관리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강아지 공장에서의 개 대량 생산과 펫숍에서의 새끼 동물 분양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루시법(Lucy’s law)'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에서는 2020년 시행된 루시법에 따라 펫숍에서 6개월 미만의 강아지와 고양이의 판매가 금지됐다. 전문 브리더에 의해 번식된 2개월령 이상의 동물만 어미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직접 대면에 의해서만 판매할 수 있다. 제 3자 거래를 전면 금지한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전 대표는 "번식장이 아무리 비참해도 펫숍에서 아기 강아지만 쏙 빼서 팔면 이런 문제를 소비자나 판매자가 알기 어려워진다"며 "번식과 판매를 일원화하지 않고 펫숍 영업을 분리 허용하는 한, 번식장의 참상은 제어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이 어미와 같이 있는 새끼만을 살 수 있다면 이런 참상이 벌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