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벨기에, 적극적 안락사·조력자살 모두 합법
독일·이탈리아, 연명의료 중단만…적극적 안락사 금지
영국,연명의료 중단만…적극적 안락사·조력자살 금지
"찬반 논쟁만 가열될라…'광의의 웰다잉' 정착 시켜야"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국가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부터 안락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12~16세 미만 청소년도 보호자 동의 하에 가능하다. 안락사 희망자의 대부분은 말기 환자이지만,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안락사도 허용된다. 모든 안락사는 지역 위원회의 엄격한 검토를 거친다. 매년 평균 약 6000명이 안락사로 삶을 마감한다. 전체 사망자의 4% 수준이다.
벨기에는 2003년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다. 2014년부터는 말기 질환과 큰 고통을 겪는 환자에 한해 나이에 관계없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벨기에서는 2018년 약 2400명이 안락사로 사망했다.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치료가 불가능한 암이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들이었다.
캐나다에서는 2014년 6월 퀘벡주가 '존엄사법'을 제정했고 2년 뒤인 2016년부터는 캐나다 전역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됐다.
미국과 호주는 주마다 의사 조력 자살에 관한 법률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버몬트, 워싱턴, 하와이, 뉴저지, 메인 등 8개 주와 수도인 워싱턴DC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안락사 허용 법안을 논의하고 있는 지역은 뉴욕을 비롯해 15개 주에 달한다.
호주의 경우 빅토리아주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지만, 호주에서 안락사를 처음으로 법제화한 주다. 2017년 9월 '자발적 조력 임종법'을 제정해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했다. 이 법은 2019년 6월 발효됐다. 다만 일정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같은 법이 발효됐다. 최근 태즈메이니아주에서도 법이 통과됐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경우 의회를 통과한 상태다.
포르투갈에서는 2020년 2월 본회의에 상정된 5개의 안락사·의사조력자살 허용 법안이 잇따라 통과했다. 법안에는 말기 암 환자 등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안락사를 허용하고 의사가 이를 돕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페인 하원은 지난해 3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법안에는 말기질환이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한해 환자가 희망하면 존엄사를 허용하고, 의료진에게 양심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을 수용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콜롬비아는 지난달 불치병 환자에 대한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했다. 가톨릭 인구가 많은 중남미 국가 중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한 것은 콜롬비아가 처음이다. 콜롬비아는 2015년 기대여명이 6개월 미만인 말기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법제화했다. 지난해 7월에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심각한 난치병 환자도 안락사 허용 대상에 포함해야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이탈리아 의회는 2017년 12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의료나 인위적 영양 공급 등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존엄사 허용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2014년 5월 헌법재판소가 연명의료 중단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소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1935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협회를 창설한 영국 역시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환자에 대해 2018년 7월 연명의료 중단만 허용했을 뿐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은 금지하고 있다. 종교계와 생명윤리단체들의 반발을 넘지 못해서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의사 조력 자살에 반대했던 영국의사협회가 회원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지난해 9월 '중립적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지난 2020년 2월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원의 40% 가량은 영국의사협회가 의사 조력 자살을 지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현재 국내에서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모두 불법이다. 다만 2018년 2월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됐다.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하기까지의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시술을 말한다.
오는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안락사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락사 합법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을 넘어서는 외연이 확장된 품위 있는 죽음(웰다잉)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늘었는데 건강수명은 오히려 짧아져 병을 앓다가 죽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정부는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더 거세지기 전 '협의(俠義)의 웰다잉(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을 넘어서는 '광의(廣義)의 웰다잉'을 정책적·제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의의 웰다잉이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 확대와 함께 독거노인 공동 부양, 성년 후견인,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노트 작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윤 교수는 "광의의 웰다잉이 자리도 잡기 전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이 법제화된다면 안락사 찬반 논쟁만 가열될 수 있다"면서 "사회와 국가가 함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웰다잉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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