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주목 받는 '매스록(mathrock)' 밴드
비건·수어 관련 콘서트도 눈길
'매스 록(mathrock)'을 내세우는 이 팀은 불가해한 세상을 정교한 박자와 유려한 선율, 시(詩)적인 노랫말로 어떻게든 껴안으려 한다. '계산된 자유'라는 말이 주는 어감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면서도 그 뒤숭숭함으로 완벽한 청춘을 노래한다.
데뷔 3년 만인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아프리콧(4pricøt)'이 그 증명이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계산법이 따로 없고,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공식 역시 확실하지 않지만 음악의 언어가 세상과 연동할 때 균열을 낸다는 걸 풀이한다.
팀명인 일본어 '코토바(言葉)'는 말, 언어라는 뜻이다. 그렇게 코토바의 음악과 언어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여름이 왔다.
코토바는 밴드 신(scene)의 기대주다. 음악계 팔방미인인 싱어송라이터 겸 음악감독 윤상이 '새로운 록스타'로 점 찍었고, 2020년 발매한 두 번째 EP '날씨의 이름' 타이틀곡 '레인(reyn)'으로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기존 멤버 다프네(Dafne, 기타·프로듀서), 됸쥬(DyoN Joo, 보컬·기타)에 세이(SEI, 베이스), 민서(Minsuh, 드럼)가 가세해 새 진용을 꾸렸다. 다음은 코토바 멤버들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드디어 정규 1집을 내놓았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EP와 싱글을 발매해오면서 '풀(full) 앨범'의 청사진을 계속 그려왔습니다. 만족스러운 앨범이 나와 뿌듯합니다."(다프네)
-아프리콧(4pricøt)이라는 앨범명을 어떻게 짓게 된 걸까요? '언어의 열매가 맺히는 여름이 온다'라는 시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앨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코토바는 단단한 씨앗으로 나타나 싹을 틔웠고, 세상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 교류하며 줄기를 뻗어 올렸습니다. 감사히도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그로 인해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매하는 정규앨범은 세상에서 받은 사랑으로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 열매는 살구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프리콧'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해당 카피는 일본 앨범 발매에 한 문장의 '메인 프레이즈'가 필요하다고 해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됐습니다. 저희는 '말'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고, 그러한 저희의 노력이 열매 맺는 앨범이자, 앨범 커버와 발매 시기도 그렇고 코토바의 열매는 여름에 맺어질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어요."(다프네)
-앞선 인터뷰에서 '자유의지'가 이번 앨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고 했어요.
"자유의지는 스스로의 방향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범의 모든 수록곡은 삶의 방향과 태도들을 차분하고 묵묵하게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계산된 자유'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 화자가 과거의 자신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뮤지션은 세상에 어떤 것을 내놓을지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입니다. 모든 예술가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들의 창작물은 인간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에 책임감을 느낍니다."(다프네)
"개인의 삶을 윤택하고 풍부하게 꾸리기 위해서 필요한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은 코토바 멤버이자 한명의 베이시스트로서 거듭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음악에서 뮤지션에게 자유의지가 중요한 이유는, 물론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제 안에서는 창작물을 만들 때 외부의 어떠한 것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큰 위안과 안도를 가져다줍니다. 자신감과도 귀결돼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정성 있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질 좋은 창작물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 충분한 발판이 돼 줍니다. 단순히 음악뿐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갖는 만족감은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들이 가진 자유의지는 생명과 직결돼 있다고 생각하며, 결국 이번 앨범의 중요한 모티브는 삶을 대하는 태도, 더 나아가서는 생(生)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세이)
"뮤지션에게 음악은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이고, 결국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말하는 창작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외부의 압력 없이 솔직하게 개인적인 마음들을 꺼내야만 하기 때문 아닐까요."(민서)
-이번 앨범 발매를 앞두고 멤버 변동이 있었습니다.
"기존 드러머가 군 입대를 위해 활동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그 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음악에 대한 논의를 오래 했어요. 그런 흐름에서 베이시스트도 함께 다른 길을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알고 있던 친구들에게 함께 연주하는 것을 제안하게 됐어요."(다프네)
"안녕하세요. 새 베이시스트 멤버로 합류하게 된 세이입니다. 저는 기존에 포크 싱어송라이터 예람의 밴드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를 좋게 봐주셔서, 합류 제안이 왔습니다. 여러분께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정말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웃음)"(세이)
"드럼 민서입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념하는 '파이데이' 공연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제가 마음에 드셨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민서)
-앨범 소개에서 서울을 섬에 비유하셨는데요, 서울은 코토바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서울은 기본적으로 저희가 활동하는 도시라는 상징이 있고, 섬이라 표현한 것은 한국 대부분의 인프라와 인재가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유일하면서도 소외돼 있다 생각했어요. 어항은 이러한 서울이 유리(遊離)돼 있는 상태로 물에 떠있게 하고 바깥 세계와 닿지 않게 하는 투명한 벽이지요. 그렇기에 서울은 매우 인위적으로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도 느끼곤 합니다. 그렇기에 서울은 고독한 별 같이 느껴집니다."(다프네)
"서울이 가져다주는 심상이 마치 커다란 수역으로 둘러싸여 외따로 떨어져, 공중에 부양하는 마음속 상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벽을 떠올릴 때마다 서울의 도시, 거리의 많은 인파 속 '나'의 존재 유무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게 됩니다. '나'는 사람 사이에 섞여있지만, 어항 속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의미의 '서울'을 감지하기보다는, 도시가 가져다주는 가깝고도 먼 마음의 거리. 그 안에서 코토바는 상실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느끼며, 열심히 지느러미를 움직이고 있습니다."(세이)
-이번 앨범엔 보컬의 비중이 커졌어요.
"저는 계속 인스트루멘털 기조로 가고 싶었는데 다프네가 보컬을 키우자고 했습니다. 재고해 보시라고 했지만 그는 강경했습니다. (웃음) 이유는 같은 수록곡도 앨범에 따라 다르게 들으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과, 낯선 저희의 음악에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문법을 적용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작품들은 음악! 연주!에 가까웠다고 한다면, 새로 믹스한 정규 앨범 수록곡들은 제가 듣고 자란 '노래'에 가깝게 해보았어요."(됸쥬)
-'매스 록'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한 박자 등이 매력인데 이 장르가 음악을 하는데 어떤 가능성과 상상력을 부여하나요? 사운드를 쌓아올리는 데는 상당히 건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하는데요, 제 안의 아름다움의 요소 중 가장 큰 것은 '구조'와 '재구성'입니다.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은 선에서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설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입니다.(웃음) 각 악기들의 리듬은 다르지만 설계도 안에서 조화롭게 맞아 들어갈 때 매우 짜릿하거든요. 실제 건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를 좋아합니다."(다프네)
"드러머로서는 기존의 4박 음악들을 연주할 때 보다 표현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매스록에서는 변박이 특별한 장치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표현의 도구로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화성이나 멜로디 등을 거의 사용하기 힘든 드럼이라는 악기의 특성상 4박 음악에서는 주도적이고 섬세한 표현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게 해줍니다."(민서)
-코로나19는 팀에게 어떤 고민거리를 안겨줬나요?
"저희는 처음부터 해외 활동에 중심을 두고 시작했는데, 해외에 직접 가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실제로 가지 못하면 그 이전에 쌓아놓은 관객과의 친밀감이라든지 관계자분들과의 커넥션이 약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점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때 당시에 뵀던 모든 공연장과 부킹 매니저분들께서 이제 제한이 풀리고 있으니 오셔도 되지 않겠냐, 꼭 와달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던 것을 알아주셨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 어떻게 빨리 갈 수 있는가입니다."(됸쥬)
-영국 대형 음악 축제 '글래스톤베리'에 섭외됐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아쉽게 무산되기도 했죠. 일본 등에서 인기가 많은데 이제 슬슬 해외 공연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실 때가 된 거 같습니다.
"도쿄의 프렌드 오브 마인 레코드(Friend of Mine Record)를 통해 정규 일본 앨범도 발매됐어요. 현재 타워 레코드(Tower Record) 신주쿠, 시부야점을 비롯한 여러 레코드숍에 입점했습니다. 올해 중에는 레이블 소속 밴드들과 일본 투어를 할 계획으로 시기를 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중화권과 유럽 방향으로 투어와 프로모션을 계속 구상하고 있습니다. 중국 및 일본의 매스록 밴드 내한 공연에 참여할 기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다프네)
-됸쥬 씨는 홍대 앞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합동 콘서트인 '우쥬콘'을 통해 알려지시기도 했죠. 최근 국내 대중음악계에 여성 서사가 도드라지고 있기는 한데 코토바가 보시기엔 인디 신에서 밴드계 여성 서사가 잘 써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여성 서사가 잘 써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지만, 여성 서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인식해가고 있다는 것은 큰 변화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아직도 예술가는 남성 위주, 소비자는 여성 위주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매우 뚜렷합니다. 이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에 영향을 받은 미디어의 영향이 큽니다. 그래도 현재는 OTT 같은 큰 미디어에서도 인종, 성별 이슈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에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밴드계 여성 서사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여성 퍼포머의 스탠스를 벗어난 아티스트들에게 '걸 크러시' 프레임을 씌우는 단계를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대에 있는 아티스트를 성별과 인종, 혹은 외관에 상관없이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각자의 노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여성 아티스트를 '뮤즈'나 '아이돌'로 여기기보다는 당신과 같은 인간으로 바라봐 보는 것은 어떨까요?"(다프네)
-6월 첫 방송이 예고된 엠넷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에도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코토바(cotoba)를 넓은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됸쥬)
-평상시에 인디 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오셨죠. 코로나19라는 어려움을 겪은 현재 인디 신에 가장 필요한 구체적인 도움과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가지 지원방안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공연장에 대한 임대료와 대관료 지원입니다. 임대료를 지원해주면서 임대인이 그만큼 임대료를 올리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또한 기획공연에 대한 지원사업 선정 수를 늘려서 실질적인 금액이 공연장과 공연자에게 자주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인디는 자본이 부족한 개인 예술가 혹은 회사이기 때문에 활동력과 기획력이 있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을 많이 줄 수 있다면 창작활동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됸쥬)
-동시에 여러 형태의 공연(6월13일 홍대 공상온도 먼데이프로젝트·7월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비건 테마의 '잇츠 비건(It's Begun)·10월 9일 수어 테마의 '언어의 형태')을 준비하고 계신데 비건·수어 관련 콘서트가 눈길을 끕니다.
"비건 관련 콘서트는 저희가 해왔던 비건 브랜드와 협업을 포함한 친환경적 활동 노선을 좋게 생각해주신 상상마당(서울) 측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습니다. '잇츠 비건(It's Begun)이라는 타이틀로 기후위기를 주제로 하는 공연입니다."(다프네)
"팀 회의에서 제가 수어를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안건을 냈습니다. 저는 약 오래전부터 어떻게 해야 아티스트(자신 포함)의 음악이 더 넓은 범위로 뻗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놓고 보았을 때 자신의 창작물이, 보고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이 돼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성립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름의 고민을 통해 멤버들에게 '수어 공연, 수어 뮤직비디오' 등의 아이디어 소재를 건의 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 같습니다."(세이)
"저는 원래부터 하나의 마음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어 앨범을 발매한 것도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어요. 수어 역시 하나의 언어로서 저의 이런 관심에 잘 부합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적극적으로 보여드리게 됐어요."(됸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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