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원부터 녹음 가득한 도봉산 자락 천축사까지
오징어게임 촬영지·둘리뮤지엄·편지문학관 등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서울 도봉구 창포원은 손꼽히는 붓꽃(창포) 명소다. 노랑꽃창포·타래붓꽃 등 이름도 생소한 붓꽃 130여 종이 5월 내내 피고 진다.
도봉구에는 도봉산국립공원·서울창포원 등 아름다운 공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붓꽃이 개화하고 도봉산 산책길이 녹음으로 가득한 5월은 이 곳이 유독 아름다운 시기다. 국민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이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오징어 게임' 주인공 성기훈이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김수영 문학관, 편지문학관도 자리잡고 있다.
서울관광재단과 도봉구청은 17일 봉산역 일대에 흩어져 있는 여러 장소를 코스로 묶어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했다.
도봉구 도보여행은 붓꽃과 함께 시작해, 가벼운 트래킹으로 마무리된다. 도보여행코스는 도봉산역→서울창포원 → 평화문화진지·평화울림터→유희경과 이매창 시비→ 김수영 시비&도봉서원터 → 천축사로 이어지는 코스다. 7.5km로 관람시간을 제외하고 약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청초·화려' 붓꽃의 향연
활짝 개화한 붓꽃을 배경으로 보이는 도봉산 선인봉이 장관이다. 도봉산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서울창포원은 5만1146m²에 이르는 생태공원이다. 붓꽃원·습지원·늘푸름원 등 12개의 테마로 정원이 조성됐다.
서울창포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붓꽃이다. 꽃을 바라보면 청초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군락을 한 눈에 담으면 보라색 비단이 사방 천지에 깔린 것처럼 화려하다.
습지원과 붓꽃원을 지나 늘푸름원으로 가본다. 늘푸름원은 그 이름처럼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전나무·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 25종을 심어 놓은 정원이다. 나무 아래는 짙은 그늘이 있고 벤치가 놓여있어 쉬어가기 좋다. 늘푸름원 바로 앞쪽으로 2코스인 평화문화진지가 연결돼 있다.
◆평화 기다리는 옛 군사시설…시민들 속으로
창포원 인근의 평화문화진지는 옛 군사시설을 예술인과 시민들을 위해 재탄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다. 방호시설의 공간성을 살려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게 구성됐다.
평화문화진지로 들어서면 정문 한쪽에 독일 베를린에서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3점이 서 있다. 베를린 장벽은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낮아지고 갈라진 이들이 서로를 마주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장벽을 지나 평화문화진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평화울림터가 나온다. 평화울림터는 특별한 음향장비가 없어도 음악공연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야외 음악당이다. 소리가 원형 벽에 부딪히며 반사해 다시 들리는 반향 현상을 이용해 음향이 증폭되도록 설계됐다. 성악·오페라·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이 사시사철 열린다.
평화울림터로 내려가는 길에는 '평화의 물길'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포신(대포의 몸통 전체)을 다리처럼 연결해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으로 절개된 포신은 무기와 전쟁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흐르는 물길은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넋을 기린다.
◆나이·신분 뛰어넘은 사랑…유희경·이매창 시비
도봉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 유희경과 이매창의 시비가 있다. 17세기 초 문장가 유희경과 부안 기생으로 한시(漢詩)에 능했던 이매창이 주고받은 사랑의 시가 새겨져있다.
유희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을 인정받아 벼슬길에 올랐던 인물이다. 이매창은 관비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전이었던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한시를 짓고 거문고를 잘 탔다. 그녀는 한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나 당대의 수많은 문인과 교류하며 명성을 쌓았다.
이매창과 유희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부안에서 만나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졌다. 둘의 나이는 28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서로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에 반해 마음을 깊이 나눴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이매창이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헤어졌고 이후 서로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시를 남겼다.
◆역사 속에 '흠뻑'…김수영비시와 도봉서원터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도봉분소를 지나 도봉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김수영 시비와 도봉서원터가 나타난다.
김수영 시비는 김수영 시인의 원래 묘지 앞에 그의 작품 '풀'의 일부를 새겨 넣은 비석이다. 시인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자기 풍자와 현실 비판의 시들을 자유롭게 써 내려갔다. 시를 쓰는 일은 머리나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을 만큼 시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1990년대 초 시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김수영 시인의 묘도 개장해 화장한 후 유골함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시비 전면에는 시인의 육필이 음각돼 있고 오른쪽에는 청동으로 얼굴을 넣었다.
시비뒤로는 도봉서원 터가 있다. 도봉서원은 조광조의 학문을 기리는 뜻으로 1573년 건설됐고,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 1971년 복원됐다.
2011년 고증을 통해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다시 철거하고 발굴조사를 하던 중 고려시대 사찰의 유물들이 발견됐다. 현재는 발굴조사를 마치고 정비사업을 하고 있어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서원 근처 도봉계곡에는 조선 시대 문인들이 바위에 새겨 넣은 글씨도 찾을 수 있다. 1700년에 김수증이 조광조의 덕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긴 '고산양지(高山仰止)'라는 글자는 도봉서원 터 맞은편 계곡에 있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바위에 새겼다는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는 글씨가 있다. 이후 도봉서원을 찾는 후학들의 이정표가 됐다.
◆천축사 경내에서 보는 도봉산의 풍광
도봉서원에서 도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 보면 산자락 초입에 천축사가 나타난다. 산자락 초입에 자리한 사찰이지만 이곳까지 가려면 30~40분가량 계단을 올라야 한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걷는길 내내 옆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숲이 우거져 싱그러운 분위기도 가득하다.
천축사에 도착해 일주문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서면 도봉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도봉산의 3대 암봉 중 하나인 선인봉이 마치 갓을 쓴 것처럼 지붕 위로 솟아있어 풍광이 멋스럽다.
천축사는 678년 의상대사가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이라는 암자를 세운 것으로 시작됐다. 1398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올 때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고 이후 천축사(天竺寺)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중국에서 인도를 부르던 옛 명칭)의 영축산과 비슷해 이렇게 이름지어졌다. 선인봉을 배경으로 천축사를 거닐며 산책을 하면 도봉구 도보여행 코스가 끝난다.
◆김수영문학관·둘리뮤지엄·오징어게임 체험관도
도보 여행코스 외에도 도봉구에는 가볼만한 곳이 가득하다.
김수영 문학관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와 산문의 육필 원고가 전시돼 있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작업하던 탁자 등이 놓여있다. 김수영 시비와 함께 방문하면 그 느낌이 색다르다.
편지문학관은 지난 3월에 개관한 도봉구의 새 명소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또 편지가 오가기를 기다렸던 느림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편지문학관에는 도봉구와 인연이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글과 해외의 유명 예술인이 남긴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시돼 있다. 방문객이 전자편지나 음성편지를 남길 수도 있다.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 남기고 간 마음의을 듣고 있으면 듣고 있는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둘리뮤지엄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캐릭터 박물관이다. 둘리에 대한 추억을 가진 어른은 물론 재밌는 체험들이 많아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 좋다.
도봉구는 오징어게임 체험관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배경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분)이 사는 동네인 백운시장에 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오징어 게임의 의상을 입고 인증샷을 찍고, 성기훈의 동네 동생 상우(박해수 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생선가게로 등장했던 '팔도건어물'을 방문해보자. 약 1~2분 거리에는 기훈과 상우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오징어 게임 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건물인 도봉중앙교회도 있다. 드라마 속에서 주변 풍경을 그대로 활용해 촬영했기 때문에 꽤 낯이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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