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 발표
'한국판 뉴딜·빅3' 등 文정부 역점사업 빠져
인수위 의견 반영된 지침…"실무 협의 거쳐"
'50조 추경' 계획에 눈길…지출 재구조화 반영
재무 악화·인플레이션 등 우려 목소리도 나와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는 그간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돼 온 '한국판 뉴딜'을 찾아볼 수 없다.
차기 정부의 지출 재구조화 의지에 발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는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판 뉴딜' 사업에 대한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경제 반등과 일자리 창출, 디지털·저탄소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의 중점 투자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 기존 사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경이 이뤄질 경우 재정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판 뉴딜·빅3' 빠진 정부 내년 예산안 지침
29일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3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분야별 중점 투자 방향의 첫 번째 항목으로 보건·복지 분야를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심화된 양극화 완화를 위해 촘촘한 소득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원 확대, 빈곤층 추락 위기 가구에 대한 선제적 지원 강화 등 저소득 취약계층 지원책과 고용·산재보험 적용 대상 지속 확대 등을 거론했다.
산업 분야의 경우 경기 반등을 위한 주력 산업 생산·수출 기반을 다지는 방향으로 투자가 진행된다. 주요 사업에는 산단 스마트화, 자동차·조선업 등 주력 산업 인력 양성 확대, 주조·용접 등 뿌리산업 공정 고도화 등을 꼽았다.
또한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사업화에 대한 지원도 이뤄진다.
환경·에너지 분야에서는 '2050 탄소중립'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필요한 부문별 감축 수단을 중심으로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해 온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보급·확산 가속화 전략도 그대로 담겼다.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미래 핵심 유망 에너지원의 보급을 위한 전 주기 지원도 강화된다.
대체적으로 지금까지의 정부 계획과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한국판 뉴딜'과 '빅3'(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등 용어가 사라진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판 뉴딜을 재정 측면에서 적극 뒷받침하고 빅3, 소재·부품·장비 등 혁신 성장에 중점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부 재정 운용의 기본 방향이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은 차기 정부의 몫인 만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이번 지침은 새 정부의 예산 편성 방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인수위와 실무 협의를 거쳤다"며 "새 정부의 정책 과제를 조금 더 반영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으면 오는 5월 초 정도에 추가적인 보완 지침 각 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예산안에 '50조 추경' 계획 반영된 듯…우려 목소리도
내년도 예산안 지침에 차기 정부의 추경 편성 계획이 녹아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간 인수위에서는 국채 발행을 최대한 자제하는 선에서 지출 구조조정으로 추경을 짜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혀왔다. 이러면 올해 예산 규모만 34조원에 육박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
반면 세출 조정만으로 50조원에 달하는 추경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당장 '4월 추경'에는 일부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국채 발행 규모에 따라 나랏빚이 1100조원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올해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으로 지난 2월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11조3000억원이 늘어난 바 있다.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70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 중이다. 재원 마련 방법에 따라 이 규모 역시 더 커질 수 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여당과 야당 모두 추경과 관련된 공약을 걸었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일반회계 예산에 이를 집어넣고 다른 예산 항목을 깎았어야 했다"며 "현재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돈이 더 풀린다는 것인데 타이밍이 좋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판을 짜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최 실장은 지난 25일 열린 브리핑에서 "이 자리에서 2차 추경에 대해 언급하고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명시적으로 한국판 뉴딜이라는 표현이 편성 지침에 나와 있지 않을 뿐이지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라며 "정책 여건 변화 등을 고려해서 다소 보완될 부분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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