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디테일"…구체성 없이 남발하는 환경 공약들

기사등록 2022/01/30 14:00:00

시민사회계 "기후·환경 적극 공약·비전 밝혀라"

'NDC 50%' 李…"에너지전환 있지만 구체성↓"

'탈원전' 반대 尹…"文 정부 정책 차별성 없어"

기후·환경 토론회 필요 지적…英·美 전례 있어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2022 대선, 지구를 위한 전환 환경운동연합 27대 정책과제 발표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1.18.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기후·환경 공약은 부실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공약도 원론에 그치거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대선 후보의 기후·에너지·환경 정책 관련 답변을 공개한 뒤 "문제는 디테일"이라며 "적극적인 공약과 비전을 밝혀야 한다"고 총평했다.

이는 기후·환경·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구체성 없이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감원전' 李 "NDC 50% 상향"…전기료 인상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1월 청소년·청년 기후위기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소 감축 목표를 40%까지 올렸는데 부족하다"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 목표를 5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수정 상향한 NDC는 40%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것으로, 기존 목표치 26.3%에서 더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40%에 대해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204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노력, 기후에너지부 신설,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2040년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기후에너지부를 중심으로 탈석탄·감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환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탄소 발생 억제, 산업 구조 전환을 위한 탄소세도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환 과정에서 우려되는 전기요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원자잿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대선 직후인 4월부터 전기요금이 10.6% 인상되면서 불신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문 정부가 탄소중립 명분을 위해 목표를 무리하게 잡은 측면이 있다. 산업 구조 전환, 재생에너지 기술 확대가 말처럼 쉽지 않은데 50%로 상향하겠다는 건 또 명분만 챙기겠다는 것"이라며 "전기요금 인상, 전환 등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면 당선되더라도 지지율 떨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직격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수행한 '2022년 대선 환경정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석탄과 탈원전 정책에 동의한다는 비율은 각각 72.3%, 58.9%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 도입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55.2%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52.9%는 탈원전시 전기료가 폭등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 전기료 인상에 부정 여론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목표치를 무리하게 늘리기보다는 탄소 포집 기술(CCUS)과 같은 기술 개발 과정을 보면서 감축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선진국들이 탄소 배출량을 연간 1~2% 정도로 줄이는 반면, 우리나라는 4~5% 넘게 줄여야 한다"며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감축하다가 탄소중립 기술이 가시화하면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2022탈핵대선연대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20대 대선 탈핵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한 후 각 당 대선후보들의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1.11. scchoo@newsis.com

◆尹, 현 정부 정책과 차별성 없어…'디테일' 부족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비판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정작 현 정부의 환경정책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후보는 지난 25일 환경 공약 발표에서 '열분해 중심의 쓰레기 처리방식 전환'을 내놨다. 재활용할 수 없었던 쓰레기를 처리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이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정제유나 가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분해 방식의 순환경제는 환경부에서 이전부터 추진해온 사항이다. 환경부는 올해 석유화학 기업이 열분해유를 납사, 경유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열분해시설 기준을 마련하고, 공공열분해시설 4곳 건설에 착수한다.

기상 및 미세먼지 모델을 활용해 고농도 초미세먼지(PM 2.5) 예측 정확도를 올린다는 공약도 앞서 추진 중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환경위성 관측자료, 기상·에어로졸 등 자료에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농도 분포·예측 모델을 구축해 왔다. 이를 활용하면 고농도 경고 발령 시간을 현행 '12시간 전'에서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현행 60%대에서 40%대로 줄이겠다는 공약도 NDC에 명시된 2030년 화석연료 발전 비중 목표 41.3%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운동연합은 "현 정부의 목표와 계획을 검토하고 공약을 짠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며 "탈원전 정책을 백지화하더라도 화석연료 발전 비중 40%대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약적 확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도 없이 '탈원전 백지화'만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5년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의무화한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해 뭇매를 맞기도 했다. 25일 환경 공약 보도자료에는 "민관이 자발적 협약(VA) 형식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세우고 실천해왔지만, 앞으로는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후 논란이 일자 대선캠프 측은 온실가스 대신 '미세먼지'로 용어를 바꿨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질의 답변서에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동의'라 답했지만, 지난 25일 공약 발표에서는 "신축 중인 것(석탄발전소)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 마당에서 탈석탄 연대 '석탄을 넘어서'가 주요 대선 후보들의 탈석탄 정책을 비교하기 위해 주최한 '석탄 치우기 대회'에서 주요 4당 대선 후보들로 분장한 활동가들이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각 후보들이 현재까지 발표한 탈석탄 공약에 맞춰 석탄을 치우는 모습을 연출하고 기후 위기에도 미온적인 입장인 대선 후보들에게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등이 담긴 강력한 기후 공약을 촉구했다. 2022.01.05. 20hwan@newsis.com

◆"기후·환경 대선 TV토론회 있어야"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가 지난해 11월 공동 의뢰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전국 행정·정책 전문가 100명은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를 꼽았다.

이처럼 기후·환경·에너지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대선 토론에서는 찬밥 신세라는 지적이 사회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는 앞서 지난 6일 20대 대선이 '기후대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선후보들이 적극적으로 기후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 '채널4'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선거토론을 진행했다. 2019년에 진행된 선거토론에 집권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불참하고, 총리가 앉을 자리에 얼음 동상이 놓이기도 했다. 미국 CNN도 '타운홀 미팅'(비공식적 공개 주민 회의) 방식의 기후위기 토론을 진행했다.

한 환경 전문가는 "사회, 경제 분야는 토론 프로그램 안에 분야가 따로 있는데, 기후·환경 분야는 그렇지 않다"며 "기후·환경 분야가 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중요성도 더 커지는 만큼 별도 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s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