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관계 60년간 우호적?...8월 사건-한중수교 때 악화

기사등록 2021/07/11 13:50:18

북 외무성 "조중 친선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과 달라

6·25전쟁과 냉전 시기 갈등과 상호불신, 오해 빈발

[평양=AP/뉴시스]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15일 북한 평양에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1.04.15.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북한 외무성은 11일 북중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 체결 60년을 맞아 양측 관계가 늘 우호적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과 중국은 갈등과 충돌을 반복해왔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냉전 종식 후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반사회주의 광풍이 보다 세차게 일고 여러 나라 사이의 관계가 급격히 변할 때에도 지심깊이 뿌리내린 조중 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무성은 또 "역사의 온갖 시련과 난관 속에서 검증되고 더욱 강화돼온 조중 친선 관계는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와 습근평(시진핑) 동지 사이에 맺어진 진정한 동지적 우의와 신뢰, 두터운 친분관계에 의해 날로 승화 발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북중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부침을 거듭했다.

6·25전쟁 후 냉전 시기 중국과 북한의 동맹 관계는 견고한 편이었지만 때로 갈등과 상호 불신, 오해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김일성은 6·25전쟁 기간 동안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정, 허가이, 박헌영 등 정치적 경쟁자를 숙청하고 박일우 등 친 중국 성향의 인사들을 권력 핵심에서 배제했다. 이 같은 숙청은 중국 지도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8월 종파 사건 때도 갈등이 표출됐다. 김일성 지도부에 반기를 들었던 반(反)김일성 인사들은 1956년 8월3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개인숭배를 비판하며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김일성은 오히려 반격을 가해 당적을 박탈하고 이들을 축출했다.

징계를 받게 된 윤공흠, 서휘, 리필규, 김강 등 반김일성파는 중국으로 탈주했다. 그러자 중국과 소련 지도부는 각각 펑더화이와 미코얀을 북한에 보내 압력을 가했다. 김일성은 굴욕을 감수하며 축출한 반대파를 복당시켰다.

【서울=뉴시스】 중국 정부가 28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했고, 방문기간동안 시 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전했다. 2018.03.31. (출처=CCTV) photo@newsis.com
김일성은 펑더화이와 미코얀이 귀국한 후 재차 이들을 숙청시켰다. 이 사건은 1958년 북한에 주둔하던 중국군이 철수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베트남전에서도 북한과 중국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중국은 내부 체제안정에 중점을 둔 반면 북한은 소련과 보조를 맞추며 반미투쟁 차원에서 베트남전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1966년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북한의 친 소련 노선을 수정주의로 규정하며 비난했다. 북중 관계는 더 심각해져 서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더니 1967년 현지 대사를 서로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한중 수교는 양측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중국은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2년 한국과 수교하는 일종의 배신을 했다. 1992년 9월27일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 직전에 북한은 "제국주의에 굴복한 일부의 혁명 변절자들의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최근 일부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하는 엄중한 사태가 빚어졌다"며 중국을 비난했다. 한중 수교 이후 북중 정상외교는 약 8년간 중단됐다.

한중 수교 후 얼어붙었던 북중 관계가 회복된 것은 2000년 김정일 방중부터였다. 이후 모두 7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방중과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거치며 북중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북중 관계는 예전만 못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북중 관계에 수차례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2003년 1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 선언 이후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중국은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북한에 이르는 송유관 일부를 폐쇄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북중 조약을 개정해 자동개입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직후에는 중국이 격앙된 어조로 북한을 비난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했다.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28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중국 방문에 부인인 리설주와 함께 동행했으며,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환영식, 연회에 함께했다. 2018.03.28.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집권 후에도 북중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북한의 장성택 부위원장 숙청(2013년 12월)과 잇따른 군사 도발로 북중 관계는 악화됐다. 북·중 경협을 총괄하던 장성택 숙청으로 양국 소통은 약화됐다. 이 와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전례를 깨고 2014년 7월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해 북한을 자극했다.

2015년 12월 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돌연 취소되는가 하면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과 5차 핵실험(2016년 9월)까지 이뤄지면서 북중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에는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 감축 등 유엔 대북제재안에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악화될 대로 악화됐던 북중 관계가 회복된 것은 2018년 3월의 일이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 초청으로 2018년 3월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시 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혈맹(血盟)'으로 규정했다. 시 주석은 같은 해 5월 중국 다롄에서 열린 2번째 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은 '변함없는 순치(脣齒)의 관계'라고 말했다.

박창희 국방대 교수는 '지정학적 이익 변화와 북중동맹관계 : 기원, 발전, 그리고 전망' 논문에서 "조중우호조약 체결 이후 북중 관계는 대외안보와 체제안정이라는 두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며 "북중 관계는 지도자들 간 개인적 친분이나 끈끈한 우의 이상으로 국가이익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북중 동맹은 미국에 대한 위협 인식, 대만문제, 북한의 생존이 미치는 영향, 대량살상무기 확산, 그리고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 등에 이르기까지 제반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주변국들과의 지정학적 현안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한 향후 북중동맹관계는 소멸하기 보다는 진화를 거듭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