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발굴
길이 10.4m·깊이 1.8m, 긴 네모꼴 석조 구덩이
"하급 관리 등 하루 150명 사용 가능했을 것"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오전 경복궁 흥복전에서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발굴된 화장실 시설을 공개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다. 북쪽에 있는 입수구 높이는 출수구보다 낮다. 이는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현대식 정화조는 미생물을 이용해 분뇨를 생물학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물로 부패조, 침전조, 여과조로 구성되어 있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문 전문가로 이날 공개회에 참석한 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인 이장훈 광운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 유구에 대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하루 150명이 배설해도 충분한 크기를 갖추고 있는 대형 화장실"이라고 소개했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하여 약 5배 정도 많다.
전문가들은 150여 년 전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고대 유적에서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변기 밑에 흐르는 구주로서 신라 시대에 발견된 변기 형태"라며 "다만 그 물이 어디서 들어와서 어디로 흐르는지는 발굴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불국사에 있는 변기는 물을 이용한 세척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부여 익산 왕궁리 터에 있는 것은 물이 나가는 구멍만 있고 들어오는 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화장실 유구에 대해 "현재 발굴된 유구는 물을 화장실 내부 하부로 유입시키는 형태"라며 "이는 분뇨를 정화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발효다. 그 과정에서 미생물 영양 물질이 물이다. 가수분해가 일어나 미생물들이 유입된 물 먹고 일생을 다해 죽게 되는 형태다. 그 과정을 거쳐 정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발굴된 이런 유구 형태는 유입구 자체가 유출구보다 낮다"며 "이는 분뇨들이 내부에서 처음에는 가라않는다. 물 속에서 정화되면 유기물은 자기 할 일해 죽고 물 위로 뜬다, 현대식 정화조도 유입구 물의 3분의 1로 되어 있다. 나가는 물 깊이는 2분의 1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다.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교수는 "현재 정화 방식이 지금 발굴된 유구 형태와 유사하다"며 "물을 이용해서 정화 과정 시스템을 활용했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사례로 외국에도 거의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복궁 화장실 존재는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궁궐지'등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배치도'와 '북궐도형'에서 화장실은 측(厠) 혹은 측간(廁間)으로 표기되어 있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 화장실은 최대 75.5칸으로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특히, 경회루 남쪽에 있는 궐내 중앙관청인 궐내각사와 동궁 권역을 비롯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부지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다.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을 담당한 오동선 학예 연구사는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 유구는 150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 문헌과 과학 분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분뇨를 따로 처리하지 않고 하루 150여명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발굴 성과를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궁궐에서 확인된 대형 화장실은 물을 끌어들여 분뇨의 악취를 억제하고 정화수를 배출하는 구조로서 첫 번째 사료라고 볼 수 있다"며 "아울러 토양 분석을 통해 씨앗 등을 통해 궁궐에 상주한 사람들의 생활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기초 자료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유구 활용 방안은 관계기관들과 협의해서 가장 적당한 방안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12일부터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문화재청 유튜브와 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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