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이날부터 무기한 총파업 돌입 공식 선언
"택배사, 분류인력 투입 등 사회적 합의 이행 안해"
강제성 없는 사회적 합의 '한계'…애매한 법 제도도
노사 간 이견이 첨예한 만큼 보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여론과 시한에 쫓겨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법적 장치도 애매한 수준에 그치면서 사태를 반복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는 9일 오후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 무기한 총파업 돌입을 공식 선언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말 택배 노사와 정부, 국회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돼온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택배사 책임을 명시한 1차 합의를 이룬 지 약 5개월 만이다.
당시 합의 이후 택배사들은 분류작업 인력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회적 합의 이행은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분류작업 인력이 투입되지 않고 있었으며, 이행되더라도 분류인력 투입 비용을 택배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사례도 있었다는 게 택배노조 주장이다.
이에 노조는 지난 7일부터 분류작업을 전면 거부했고, 사회적 합의 기구는 2차 합의 과제인 '택배 요금 현실화 방안'을 비롯해 이 문제를 전날 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사실상 파행됐다.
대리점 연합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일차적인 이유였지만, 택배사들이 분류작업 등 과로사 방지 조치를 1년 유예해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결렬의 주요 원인이 됐다.
택배노조는 이날 투쟁 결의문에서 "이는 우리 택배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위험에 방치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택배사들의 1년 유예 요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분류작업은 즉시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각에선 분류작업 문제 등 택배 노사 간 사회적 합의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은 '사회적 합의'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합의의 정신을 지키는 지속력과 이행의 강제성은 보장해주지 못한 게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한을 정해놓고 정부 여당이 사회적 합의 도출에 급급했던 것도 이번 사태를 어느 정도 예고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 대란이 우려되면서 '설익은' 합의에 일단 당사자들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앞서 올해 초 이른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지만, 분류작업과 관련한 책임 소재는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
법적 근거를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규정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이 법안을 발의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분류작업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결정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결국 사회적 합의가 법적 사각지대 내에서 돌파구를 만들 가능성은 비쳤지만, 그 정신이 지속적으로 이행되는 체계로까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당분간 이를 둘러싼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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