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어린이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미술품 수집 과정에서도 문화유산 보존과 향유에 애착을 보였던 고인의 뜻을 반영했다는 게 삼성 측의 전언이다.
삼성은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유족들의 상속세 납부 및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비싼 치료비를 걱정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지원 용도로 3000억원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돈이 없어 고귀한 생명을 잃는 어린이가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고인의 뜻을 이어가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고인의 '인간과 생명 존중' 경영 철학과 함께 남다른 '어린이 사랑'도 반영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전에 이건희 회장이 취임 후 사실상 첫 번째로 추진한 사회공헌 활동도 어린이 복지 사업이었다. 1989년 사재 102억원을 출연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고 이를 통해 같은 해 12월 첫 번째 어린이집인 '천마어린이집'이 개원했다. 이후에도 이 사업은 꾸준히 지속돼 지금은 전국 30여개 삼성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외부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창밖에 낙후된 주택들이 밀집돼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비서진을 불러 어린이집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양질의 보육 프로그램을 통해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소신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 회장은 어린이집 건설 중에는 직접 현장을 찾아 "5살, 6살 어린이들이 생활할 텐데 가구 모서리가 각이 져서는 안된다"고 당부하고 "하루 급식의 칼로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개관 소식을 보고받고는 "진작에 하라니까 말이야"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 2002년에는 총 4500억원을 출연해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2006년 사재 3500억원을 추가해 교육부로 이관하는 등 어린이·청소년 복지에 대한 뜻을 이어나갔다.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했던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들이 국민들 곁으로 한 발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도 고인의 뜻이 담겼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이번 기증 대상에는 고미술품과 세계적인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의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건, 2만3000여점이 포함돼 일단 규모면에서 상당하다.
또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나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이 소장한 고미술품 2만1600여점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우리나라 근대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이 포함돼있다.
한국 근대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작가 연고지의 지방자치단체 미술관이나 작가 미술관에 기증한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소장품도 기증 내용에 포함됐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비롯해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다.
지정문화재 등이 이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예술애호가이자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던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이 회장은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은 '이건희 컬렉션'에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 국내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된 것도 이 같은 신념에 따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양 유명 근대 미술품 등의 해외 유출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살리고 국민들과 함께 예술품을 향유하기 위해 기증하겠다는 결정을 일찌감치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사회 환원 계획에는 이건희 회장의 유지가 담겼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고인이 생전에 남긴 말들도 이목을 끈다.
또 2013년 신년사에서도 "어려운 이웃, 그늘진 곳의 이웃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공헌 사업을 더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수차례 사회공헌을 강조했다.
특히 의료 공헌과 관련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임원회의 특강에서는 "우리나라 병원의 문제는 한 사람이 입원하면 40명까지 위문객이 몰려오는 데 있다"며 "여기에 대한 해결방안은 병원을 복합화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또 1997년 자신의 에세이에서는 "이제는 더 실질적인 어린이 교육에 소매 걷고 나서야 한다"며 "어린 자녀들이 더 이상 길거리에서 배회하거나 시간을 때우러 이곳저곳을 전전하지 않도록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고 여가 시설도 다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2003년 3월 보광 휘닉스파크로 국내 출장을 갔던 당시에는 ""국내 암퇴치 활동 현황을 한번 살펴 보자.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고, 건강진단을 안하니 암을 조기발견 못하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라며 "우리가 매년 조금만 내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미술품에 대해서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회의 당시 "대한민국의 문화재다, 골동품이다 하는 것은 한 데 모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철기, 자기, 사화 이런 질 좋은 것들이 1억점 이상 모여있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고 대영박물관이고, 미국의 스미소니언"이라며 "만일 이들 박물관 물건을 전 국민이 서너 점씩 나눠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2004년 리움 개관식 연설문을 통해서는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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