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그리움, TV로 달랜다" 홀몸 노인 쓸쓸한 명절

기사등록 2021/02/13 05:03:00 최종수정 2021/02/13 08:06:56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가족 발길 줄어 고립감 심화

명절 맞이 복지관 떡국 나눔 행사·봉사 활동도 끊겨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설을 사흘 앞둔 8일 광주 남구 월산동 한 주택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 쓸쓸한 명절을 보내는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1.02.12.hyein0342@newsis.com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코로나로 자식도 못 보고, 노인정도 문을 닫았어. 기나긴 연휴 동안 유일한 벗은 TV 뿐이제."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8일 광주 남구 월산동의 오래된 주택가. 홀몸 노인들은 코로나19 여파로  고향을 찾는 자녀들의 발길마저 끊기며 외롭고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월산동 주민 박길순(87·여)씨는 한달 간 노령 연금 30만 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주택 관리비 11만원, 약 값 15만 원을 치르고 나면 수중에 남는 식비는 4~5만 원에 불과하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때지 않고, 전기 장판은 잠자리에 들 때만 켰다. 수 개월 전에는 밥 지을 쌀조차 없어 행정복지센터에서 쌀 20㎏ 1포대를 급히 지원 받았다.

박씨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복지관에 들러 홀몸 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나눠 주는 떡국용 떡·야채를 챙겼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식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식구들 안 데려와도 된께 잠깐 너만 들려라. 떡국 떡 챙겨 가서 설 쇠라"며 복지관에서 나눠준 식료품을 따로 포장했다.

박씨는 "여섯 식구를 보살피는 딸도 살림이 여의치 않은데 도와줄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통증이 심해지면 약 값마저 부족하다. 코로나19로 경제도 어려운데 차마 자식들에게 '용돈 달라'는 말은 못하겠다"며 "TV에서 해주는 트롯 재방송이나 보며 명절을 나야겠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명절마다 노인정에서 진행하던 '떡국 나눔 행사'가 열리지 않자, 박씨는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근 쪽방촌에 사는 김희정(76)씨도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원룸에서 홀로 명절을 보낸다.

김씨는 슬하에 둔 자녀 2명과 20년 넘게 연락이 끊겼다.

해외에서 목수로 일한 김씨는 초·중·고등학교 입학과 졸업식 때에만 자녀를 만났다. 아내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귀국했지만 교류가 없던 자녀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다.

뒤늦게 연락하려 했지만 당뇨·고혈압 등 지병을 앓는 자신의 처지가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관뒀다.

명절마다 찾아오는 대학생 봉사단이 가족의 빈 자리를 채웠다. 김씨에게는 봉사단이 건네는 따스한 안부 인사, 손수 끓인 미역국, 청소 봉사가 큰 즐거움과 위로를 줬다.

지난 추석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생 봉사단 발길마저 끊겼다.

김씨는 이번 연휴 동안 전남 영암의 아내 묘를 찾아가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김씨는 "잠들기 전 아내의 사진을 보고 '가족의 따뜻함'을 떠올린다"며 울먹였다.

남구 봉선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서영례(92·여)씨는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도 홀로 명절을 맞는다.

서씨는 6명의 자녀들이 각자 데려온 일가족이 함께 모여 집 안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지난해 설날을 떠올렸다.

서울에 사는 자녀가 영상 통화로 설 귀성을 대신해 수시로 안부를 전하지만, 서씨의 상실감은 크다.

서씨는 "갈 곳 없는 노인은 손주들에게 용돈 쥐어주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나눠 먹는 것이 낙이다. 올 한해도 유난히 길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씨는 요양 보호사가 싸온 명절 음식으로 이번 설을 보낸다고 전했다.

광주시 고령사회정책과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자녀들의 귀성이 줄며 고립감을 느낄 홀몸 노인에게 명절 맞이 특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대면 복지 프로그램과 봉사·위로 방문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며 "홀몸 노인의 건강한 명절 나기를 위해 1대1 지원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 홀몸 노인 수는 ▲2018년 4만3802명 ▲2019년 4만6815명 ▲2020년 5만679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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