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볼턴, 美 매파 일방 주장…받아쓰기 신중해야"(종합)

기사등록 2020/06/22 19:05:35 최종수정 2020/06/22 19:33:48

볼턴은 네오콘서도 핵심이자 슈퍼 매파 평가

"그대로 수용하면 불필요한 오해 소지 있어"

"극우파 초강경…그대로 받아쓰는 건 위험"

"트럼프 대외정책 신뢰도 하락 불가피 우려"

北, 대남 강경 행보 속 대미 반발 가능성도

[워싱턴=AP/뉴시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의 내용이 연일 미 정가와 세계 외교계를 흔들고 있다. 왼쪽은 2019년 9월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발언 중인 볼턴의 모습. 2020.6.22.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을 통해 남·북·미 관계에 관한 비화를 공개하면서 국내 외교가에서도 파문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실 관계도 불투명한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사안과 기밀정보까지 공개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이며 네오콘의 핵심이자 '슈퍼 매파'로 꼽히는 볼턴 전 보좌관의 일방적 주장으로 과장이나 왜곡 우려를 제기했다.

다만 폭로 후 파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미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기 위한 의도인 만큼 남북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번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남북 관계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후폭풍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22일 외교가에 따르면 오는 23일(현지시간) 정식 출간될 예정인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의 PDF 파일이 지난 주말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됐다. 회고록에는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판문점 회동 당시 상황,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가 기술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지난해 6월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동행을 원하지 않았으며, 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니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먼저 했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겨 있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볼턴이) 실무자로 참가했기 때문에 흐름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볼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등 주관적인 평가 부분은 굉장히 조심해서 봐야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미 극우파 중에서도 초강경파인 볼턴의 시각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상당히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볼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고, 제가 볼 때도 볼턴의 얘기가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네오콘 출신으로 대북 선제공격론을 주장해온 볼턴 전 보좌관은 이란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W 부시 행정부에서 초강경 대북 정책을 주도했다.이후 지난 2018년 4월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 끝에 지난해 9월 해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라는 '리비아식 모델'을 언급해 모든 걸 망쳤다고 비판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백악관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입장이나 의견으로 과장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며 "현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네오콘, 의회 내 보수파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의 본질적 입장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당시 북미 외교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회고록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은 데 이어 청와대와 여당에서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4·27 남북정상회담 특사단으로 참여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실관계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미국 외교가에서도 극단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볼턴 전 보좌관의 이야기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위험하다"며 "회고록은 자신에게 유리한 관점에서 쓸 수밖에 없는 만큼 공개된 자료를 갖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열린 미국 중소기업 재개장 관련 주지사들과의 원탁 회담에서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살펴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북한과의 협상 당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 김정은이 분통을 터뜨렸다"며 "그때 그 자리에서 해고했어야 했다"라고 북미 관계 악화의 책임을 돌리는 트윗을 게재했다. 2020.06.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인종 차별 시위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까지 터지며 미 대선에는 일정 정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고록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제동을 걸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만큼 한반도 문제에 미치는 파급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미국 언론에서는 볼턴 회고록을 근거로  반(反) 트럼프 캠페인을 크게 이용하는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갑자기 한반도 문제에서 초강경으로 돌아서거나 볼턴의 회고록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임스 김 연구위원 역시 "역사적으로 전쟁 등과 같은 사건이 아니면 외교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외교 안보 이슈 중에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안보 현안에서 전략이나 계획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결정한다는 자체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파장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볼턴 전 보좌관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의 신뢰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정상간 톱다운 방식의 외교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범철 국가전략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국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북한 문제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관계, 대유럽 관계도 포함해 다루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위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사실 상당히 동북아나 한반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볼턴은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일괄 타결 방식을 선호했고, 북한이 먼저 핵을 신고하고 핵 물질과 미사일 등을 반출하라는 과거 '리비아식 해법'을 강조했다"며 "당시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단계적 해법에 동의하면서 일단 북한이 초기에 조치를 하면 미국이 보상하고, 다음에 북한이 하는 제안을 했던 시각차가 존재했고, 그런 부분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시각을 이번 책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박원곤 교수는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뿐만 아니라 대중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낚였다(hooked)'는 식의 주장을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 정책에 신중해지며 탑다운 방식의 대화에도 제동이 걸리고, 우리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강경 행보를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향한 공세로 전선을 확대할 지 주목된다. 그간 북한은 리비아식 모델을 주창했던 볼턴 전 보좌관을 '흡혈귀' '인간 쓰레기'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고, 뒤에서는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더 많은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북미 정상간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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